유엔에서의 10년간의 코피 안난 (Kofi Annan)은 혹독한 시기를 보냈다고 분석된다. 그가 옳바른 인물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많은 이들은 `예`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발칸 전쟁의 부끄러움, 루완다의 학살, 수단의 다르푸르 (Darfur)에서 시작된 인종 학살, 그의 아들의 식량을 댓가로 한 석유 (oil for food)사건에 연류, 이라크 전쟁에 있어 부시에 의해 받은 모욕 등에 불구하고 그의 유엔 활동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 보였다는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한국의 반기문이 새로운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었다. 그의 선택은 미국과 유럽이 지지하는 후보자와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지지하는 후보자간의 경쟁에서 어느 누구도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한 결과, 그 대안으로서 예기치 않게 출현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는 외교가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지식의 미비로 이미 몇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번째로 사담 후세인의 사형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에서 반 사형 캠페인이 일고 있는 것을 감지한 못한 상태에서 유엔은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들을 규제할 수 없다고 했다가 많은 반박를 샀고 몇 일 후 그의 말을 번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최근에 사이프러스 문제를 언급하는 데 있어 사이프러스가 두 개의 국가로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시급한 문제는 유럽을 이해하고, 아시아 와 미국은 오랫동안 긴밀한 관계 (미국의 종속)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 유럽인들에게 친미적인 편견을 없애는데 좀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새로운 유엔 사무 총자의 선택의 편법과 그의 자질 등에 대한 의문을 안고 유엔은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문제는 유엔의 많은 내부적 문제점과 미국의 독주적 제동에 저항하면서 국제 사회에 있어 유엔의 역할을 어떻게 실행할 수 있는가이다. 특히 오늘날 세계를 통치할 유엔의 능력은 다시 한 번 이라크 전쟁과 미국 행정부와 네오콘 (neo-Con)의 경멸적인 태도에 의해 의심 상태에 처해있다.
유엔은 어떤이에게는 “위선의 천국”, 아니면 어떤이에게는 인류애의 가장 나은 희망으로 보이고 있다. 유엔은 세계를 반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단 안전 보장 원칙을 통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것의 커다란 스폰서였지만, 이것의 탄생과 거의 동시대에 죽은, 루즈벨트 (Roosevelt)는 두 개의 세계 대전의 책임이 있는 유럽 강대국들의 균형을 초월을 생각했다. 즉, 집단 안전 보장에 근거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었다.
1945년 샌프란시스코의 UN의 창설 회의에서,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지도자였던, 해리 트루먼(Harry Truman) , 은 이 서약이 포함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추구했다: “우리의 힘이 크든지 작든 지간에, 우리 모두는 항상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하는 허가증을 우리 스스로 부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1954년, UN은 상대적으로 50 구성국가들의 안락한 클럽이었고, 북반구의 부유한 민주적 국가 (?)들에 의해 지배되었었다.
45년 이후 유엔은 지금껏 50 년 동안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5 강대국의 정권들의 상대적 다양성으로 인해 균형을 초월한 집단 안정 보장에 의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우기나 그들간에 냉전이 터졌다. 거부권의 협약은 원자탄의 테러를 통한 상호적 불설득에 의해 마비된 두 대치 진영들의 그 어느 국가도 세계 균형을 각자의 유리한 위치로 돌리는데 있어 결정적인 잇점을 가질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소련에서 부터, 중국, 캄보디아, 수단,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수백만의 인간들이 학살되고 억압되었다. 하지만 유엔은 그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사실상, 각 국가의 내부 사건에 대한 국가들의 주권은 유엔보다 항상 더욱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론적으로 한편으로 5 강대국의 거부권과 다른 한편으로, 각 국가들의 주권은 유엔에게 세계에서의 정의와 합법성을 줄 능력이 있는 곳이라는 확실한 가정을 허망하게 했다. 다국간 협상은 단지 외면적인 장식이었고, 실질상으로 항상 5 강대국의 거부권과 각 국가들의 주권이 더 강하게 작용했었다.
1993년 초에, 유엔의 운영과 행정의 간부이었던, 딬 쏜버러(Dick Thornburgh)는 냉전 이후의 “새로운 세계”에의 도전에 대처할 유엔의 비적합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유엔은24 시간 내에 전 세계에서 유엔의개입을 요구하는 시대에 절대적으로 비적합한 기계라고 분석했다. 그 이유로서 비효율적 요원들, 예산의 문서상의 남용, 낭비와 부패 등을 들었다. 몇 달 후 당시 유엔 의장이었던 부트로스 갈리(Boutros Boutros-Galli) 는 “유엔을 현대화하고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의 결정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무엇을 제안하는가?” 라는 질문서를 각 멤버 국가에 보냈다.
2004년 9월에 유엔 의장인 코피 아난은 영국 BBC 방송에서 오래전부터 말할려고 그리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을 말했다 : 이라크 전쟁은 비합적이었다. 왜냐하면 두번째 결의안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그것에 즉각 반박했다: 이라크 전쟁은 옳지 않았지만, 합법적이었다. 왜냐하면 세 개의 결의안은 한 전쟁을 위해 충분한 것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전임자인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는 전에 말했다: “똑같은 시간에 세계의 경제학자, 세계의 통치자, 세계의 경찰, 세계의 간호원이기를 나에게 묻는다.” 첫 두 기능은 유엔의 능력과 힘을 넘어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 통치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5개의 영구 멤버의 거부권과 각 민족 국가들은 유엔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로서 무능하다. 왜냐하면 군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두 기능들 역시 그리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그리 대단치 않은 결과에 비해 많은 기금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있기 때문이다.
유엔은 다수에 의해 결정되는일종의 민주적 세계의회가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단지 5 개 영구 회원 국가들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고집된 거부권 (veto) 은 우선적으로 그 두 국가의 내부 문제에 그 어느 국가도 개입하지 못하기 위한 자신들을 위한 사전 예방 조처였고, 두번째로 유엔의 천막 안에서 잠재적이고 고립주의적인 강대국들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유엔 활동의 다양한 실패들의 중요 요인들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 즉, 개입에 대한 실패 또는 개입에의 지연.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의 오랫기간의 인종차별 정책, 루안다의 대량학살, 카시미르에 대한 인디아 – 파키스탄 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들간의 끝없는 분쟁; 다푸르 (Darfur)의 흉악; 북한과 이란의 현실적 또는 미래의 원자 무기생산 문제에 있어 조심스러운 걸음을 해야만 했다.
오늘날 유엔은 193 구성국가로 부풀어졌고 남반구의 개발도상국가들에 의해 지배되어진(?) 상황은 많은 미국인에게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뉴 라이트와 같은 부쉬 행정부에 있어 유엔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비유용할 뿐만 아니라 손해적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유엔을 취약하게 하고 엄격하게 비판함으로서 워싱톤의 요구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게 하는 것이 편하다. 이러한 취지의 하나로 미 대통령 부쉬가 주창한 민주주의적 국가들의 연합 또는 유일하게 민주주의적 국가들로 혼성된 국제 조직 계획은 이러한 미국의 감정을 나타낸다고 분석되었다.
미국이 그 자체 내부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한 대외 정책에 있어 민주주의적이라기 보다는 제국주의적인 행위를 취해왔다. 베트남 전쟁, 칠레의 아엔데 정권 전복을 위한 피노체의 지원, 쿠바 혁명 등의 많은 예들에서 우리는 보아왔다. 더우기나 이 조직은 유엔내에서 활동하는 것인 지 아니면 그것을 대체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누가 이 조직을 이끌지는 누구나가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1945년의 강대국들은 더 이상 오늘날에 있어 강대국들이 아니다. 육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영국은 비토권을 가져야만 하고 일억 이상의 인구를 가진 인디아는 비토권을 갖을 수 없는 이유는? 세계의 두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일본은 비토권을 가질 수 없고, 일본의 반도 안되는 경제력을 가진 프랑스는 비토권을 가지는 논리는? 아랍 또는 이슬람 국가들중의 한 국가가 영구 멤버 좌석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이 시스템은 제3세계에 불공정했었고 반감을 일으켜왔다. 1993 년 니노 안드레앗따 (Nino Andreatta), 전 이탈리아 외무부 장관, 는 거부권을 가진 5 영구 회원 국가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당시 경제적 대국인 독일과 일본을 영구 멤버로서 추천하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개혁 캠페인을 했다. 국제 공동체를 헤게모니화 하려는 시도에 대한 필수적 해독제로서 그리고 집단 안전 보장의 서비스에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국제 권리의 확실성에 대한 합의를 확대하기 위한 도구로서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유엔은 위기를 해결하기 보다는 들려주고 연구하는 것을 더 잘한다고 비판되어 왔다. 그것에 대해 유엔은 그들에게 허용된 수단들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고 반박할 수 있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일 수 있다. 왜냐하면 유엔은 스캔들과 부패, 거대한 자리 차지와 낭비로 덮인 기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유엔은 위선의 천국으로서 계속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애의 가장 나은 희망의 장소로 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누가 말해 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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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의 성립, 희망, 오해, 착각, 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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