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라는 인간은 지극히도 현대화에 찌든 인간이다. 상식에 기반한 인간이 보는 따뜻한 면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눈물한번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악인이거나 잔인한 살인자는 아니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살인을 하게되고 사람들은 그 사건을 통해서 뫼르소에 대해 경악하게 된다.
뫼르소는 재판정에서 자신의 살인 이유를 태양 때문에 눈이 부셔서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를 냉혹한 살인마로 취급해버리고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재판을 받는 뫼르소에게 있어 사람들의 질책이나 항변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겉돌 뿐이다. 그것은 뫼르소의 생각이나 삶의 방식과 재판소에 있는 사람들의 그것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유를 추궁하고 뫼르소에게서 어떤 죄책감을 발견하려고 하지만 뫼르소 자신은 살인에 대한 어떤 이유도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이 강요하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뫼르소는 유죄인 것이 된다.
재판정에서 사람들은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담담했다는 사실, 슬퍼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어찌보면 뫼르소는 기존의, 혹은 다수의 가치체계가 가한 폭력의 희생자인 셈이이다. 다르다는 것,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상태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비난과 제약이 따른다는 것, 그것이 뫼르소를 이방인이게 했던 이유다.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인식, 인식 그 자체가 카뮈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유일한 존엄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카뮈는 이러한 부조리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해결을 꾀하지 말고, 부조리에 반항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여 그것을 초극하려 한다. 이 장면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세 뫼르소와 신부간의 대화에 나타난다. 신부의 신성함, 구원, 죄사함 등 도덕적이고 숭고한 말에 뫼르소는 처음으로 격한 분노를 느끼며 신부에게 욕을 한다. 즉, 해결될 희망이 없는 부조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인간의 생명이며, 부조리의 초극을 준비하는 가치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인간의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속에 고귀한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카뮈는 믿고 있으며, 그것만이 그가 부조리와 대결하는 유일한 무기인 것이다.
뫼르소는 까뮈의 철학적 현실이다. 아무 의미없는 무료한 나날들의 그 허무함이야 말로 인간이 느껴 보아야 할 어떤 진리일지도 모른다.
이방인, Albert Camu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