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나 용역의 무역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국토와 인구만 있다면 팔만한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적 소유권의 분야에서는 대부분 선진국이 판매자이고 개발도상국이 구매자이므로 지적 소유권에 대한 보호를 확대하면 개발도상국들이 고스란히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
현재 아프리카 국가의 국민들은 HIV/AIDS로 고통 받고 있다. 그러나 약값은 대단히 비싸서 연간 약값만 1~1.2만 달러에 달한다. 이는 아프리카내에서도 가장 잘사는 남아공이나 보츠와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의 3~4배에 해당하는 액수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아프리카 국가들은 태국이나 인도 등지에서 정품 약값의 2~5%에 불과한 복제약을 수입했고 정품 약제조사 41개사는 2001년 남아공 정부를 국제 약품법과 지적재산권 협정위반을 이유로 제소했다.
지적재산권 옹호론자들은 특허를 통한 이익보장이 발명가들과 기업들이 신기술을 개발하는 촉매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허는 천재의 불길에 이익추구라는 연료를 붓는 것`이라고 말했던 링컨의 말을 인용하며 국가가 복제나 병행수입을 막지 않으면 신규 백신 연구에 제약사들이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새로운 아이디어의 공급자체까지 막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의 주장은 상식에도 부합하여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반쪽짜리 진실일 뿐이다. 인간은 이익추구만을 위해 발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호기심과 인류를 이롭게 하기 위한 욕망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너무 이상적으로만 들리는가? 2000년 미국의 의약품 연구자금 가운데 제약사에서 투자한 자금은 43%, 정부가 29%, 자선단체와 대학이 28%였다. 이렇듯 기술개발은 단지 기업이익만을 위해 기업들이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신기술은 굳이 특허라는 강제적인 독점조치가 아니더라도 모방의 난점, 브랜드, 학습 지연 등의 방식으로 이미 자연적인 독점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19세기 특허 반대론이 주장했던 논거였고 기술 혁신을 중시했던 슘페터가 오히려 특허를 전혀 다루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모두들 공론화시켜 말하기는 꺼려하지만 보다 핵심적이고 큰 문제는 지적재산권의 철저한 보호로 인해 후진국들의 선진기술 습득의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당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1960~1970년대에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비싼 해외 원서를 살 돈이 없어서 복사본을 제본해서 책을 구매해서 공부했다. 1980~1990년대 천문학적으로 비싼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돈이 없어서 불법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컴퓨터 디자인을 익혔다. 이러한 명백한 "지적재산권 침해행위"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발전을 정체시키거나 퇴보시켰다고 누가 감히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역관련 투자에 대해서도 이와 비슷한 논리가 성립한다. 외국인의 국내투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고 할 때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 진입해 시장을 개척하며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상대적으로 선진국에 진입할 강한 기업을 소유하지 못한 개발도상국들은 외국인 투자규제의 완화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막상 투자자유화를 상호호혜주의에 입각하여 양국이 합의한다하더라고 결국 선진국만 이익을 얻게된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필요로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수많은 예외규정을 만든다. 예컨데 국내 보조금은 대부분 금지되어있지만 농업, 기초 연구개발, 지역 불균형 해소와 관련된 보조금은 허용된다. 선진국들은 연간 1,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농업보조금을 방출한다.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이런 보조금의 사용이 허용된다고 해도 그림의 떡이다. 개도국들은 연구개발을 많이 하지 않으니 보조금을 지급할 대상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제자본이동의 자유화는 어떠한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국제적인 자본이동의 자유화는 국가간 저축 격차를 메울 뿐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정부정책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선진화시켜 최상의 업무 기준을 확산시킨다. 지극히 경제교과서적인 답변이다.
정말 그럴까? 우선 해외은행들로부터 유입되는 차입금을 예로 들어보자. 이런 식의 자본 흐름은 변동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시점에 유입되거나 유출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 개도국의 미래 전망이 밝으면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몰려들어와 국가내 자산시장(부동산, 주식 등)에 순식간에 거품을 양산한다. 반면, 금융위기가 발생하거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면 자산버블이 붕괴되고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한꺼번에 철수하게 되면서 경기침체가 더더욱 악화된다. 개발도상국가들이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선진국의 강권에 못이겨 자본시장을 개방한 이후 금융위기를 훨씬 더 자주 경험하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제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945~1971년 사이에 개도국들은 금융위기는 1번, 통화위기는 16번 겪었다. 그러나 1973~1997년 사이에 개도국들은 17번위 금융위기 57번의 통화위기를 겪는다. 게다가 이 수치는 1998년 이후 브라질, 러시아, 아르헨타나 위기는 포함하지도 않은 것이다. 심지어 선구적인 자유시장경제론자와 IMF조차도 때이른 자본시장 개방과 자본의 유출입의 폐단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추세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 1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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