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키스는 아토스 산에서 고행을 통하여 천국에 이르려는 무수한 수도승을 만났다. 그는 이 산에서 '동굴의 마카리오스'를 만난다. 그는 이곳의 수도승중에서도 거룩함을 얻을 것으로 알려진 성인이었다.
그는 천국에 들기 위해 아토스 산에서 목숨을 걸고 고행하는 무수한 수도승들의 이기적인 수행의 의미를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카리오스에게 묻는다. 카잔차키스가 한 얘기 중의 수도자는 극락행을 미루고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을 연상시킨다.
카잔차키스: 저는 천국에서도 도무지 평안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어느 수도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도자가 한숨을 쉬자 하나님이 불러서 왜 한숨을 쉬느냐고 물었다지요. 그러자 그 수도자는 천국의 한가운데로 저주받은 자들의 눈물의 강이 흐르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였답니다. 고행을 통하여 혼자 천국에 드는 것이 마침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마카리오스: 사탄아 물러가라!
카잔차키스: 어르신 저는 사탄도 아니고 어르신을 유혹하러 온 사탄의 심부름꾼도 아니올시다. 저는 순진하고 소박한 농부처럼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믿고 싶은 청년일 뿐입니다. 사람의 육체 또한 하나님꼐서 당신의 형상에 따라 빚으신 작품입니다. 어째서 육체를 부정해야 하나님 나라로 들 수 있는지 몰라서 이러는 것입니다.
마카리오스: 너에게 화 있으라. 지옥으로 떨어진 악마도 같은 말을 했었다. 너의 이성에, 너의 자아에 저주가 내릴 것이다!
카잔차키스: 어르신, 바로 그 자아가 있어서 인간은 짐승을 뛰어넘어 하느님을 섬깁니다. 그 자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지요
마카리오스: 그러던 자아가 하나님을 능멸하게 되었다. 이제 그 자아를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은 노새이니, 이제 그 노새를 타고 떠날 일이다.
마카리오스는 말끝에 빙그레 웃었다. 카잔차키스는 그 까닭을 물었다.
마카리오스: ... 이토록 행복한데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노새의 발소리를 듣는다.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인데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카잔차키스는 생각했다. 겨우 이런 대답이나 듣자고, 삶을 거부하고, 육체를 부정하라는 겨우 이따위 대답이나 듣자고 그 험한 바위산을 기어 올라왔단 말인가... 아직은 떄가 아니다. 내게 삶은 아직도 아름답다. 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아직도 아름답다. 나는 이 세계를 증발시킬 수는 없다. 카잔차키스가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서나 성인은 비아냥 거리듯이 이렇게 말한다.
마카리오스: 내려가려고? 행운을 빈다. 세상에 안부나 전해다오.
카잔차키스: 천국에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 만나시거든, 제가 인간이 이렇듯이 죄악과 악마에 시달리는 것은 하나님 탓이라고 하더라고 전해주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든 탓이라고요
청년 카잔차키스는 산을 내려오다가 산 기슭에서 한 파계승을 만난다. 마카리오스와 달리 파계승은 청년 카잔차키스에게 고해하듯이 이런 고백을 했다.
파계승: 내 나이 벌써 예순... 수무살이 되기도 전에 수도승이 되었어요. 그로부터 근 20년 동안 나는 저 아토스 산 수도원에서 하나님 말씀만 묵상했지요. 태어난 뒤로 여자를 알지 못했으니 여자에 대한 열망으로 괴로워할 일도 없었어요. 날이면 날마다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이도록 땅바닥에 짚고 기도를 올렸지만 하나님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나는 절망한 나머지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나같은 하찮은 인간이 무슨 수로 하나님 뵙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만 단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이승 것이던 천국 것이던 구원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게 하시어, 제가 기독교인이 된 보람을 느끼게 해주시고, 아토스 산에서 보낸 세월이 헛된 세월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파계승: 울고불고 금식하고 기도했지만 하릴없었어요. 내 마음은 열리지 않았어요. 악마가 내 마음을 잠그고 열쇠를 감추어버렸었나 봐요.. 그렇게 헛된 세월을 보내다가 한번은 살로니카로 파견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래서는 안 되는 줄을 알면서도 나는 한 여인을 알게 되었답니다. 아.... 그 여자와 동침한 날 밤, 나는 평생 십자가에 못 박혀있다가 부활하고 있다는 기가막힌 느낌을 경험했답니다. 육신이 쾌락의 절정을 느끼는 순간, 하나님이 두 팔을 벌리고 내게 다가오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날이 밝아 오기까지 감사기도를 드렸답니다.
전날까지만해도 나는 기쁨을 모르는 인간, 기뻐해서는 안되는 줄만 알고 있던 인간이었어요. 그러나 여자를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다른 인간이 되었지요. 나는 그제야 하나님이 얼마나 선한 분이신지,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는 분이신지 깨닫고 감사 기도를 올릴 수 있었어요. 하나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를 통해 나를 잠시나마 천국으로 이끌어주셨던 것이지요. 나는 단식이나 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자를 통해서 하나님을 뵙고 그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
파계승: 40년 전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죄 역시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속죄하라고요? 나는 안해요. 분명히 말하거니와 하나님의 벼락을 맞아 콩가루가 되는 한이 있어도 나는 속죄하지 않겠어요. 내게는 뉘우칠 게 없어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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