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인생을 되돌아볼 때 내가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던 때는 별로 많지 않다. 우선 기억나는 대로 꼽아 본다면 이렇다.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했을 때 행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학에 전임(專任)으로 취직이 되었을 때 행복했다. 젊어서 연애를 할 때, 내가 쫓아다니던 여자와 첫 데이트가 이루어졌을 때 행복했다. 결혼을 전후한 반 년 가량의 기간 동안 행복했다. 내가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행복했다. 관능적 사랑에 굶주리기 오랫만에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를 만날 수 있었을 때 행복했다…. 대략 이런 정도다.
반면에 불행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때는 다음과 같다. 불행하다는 느낌은 행복하다는 느낌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기간에 걸쳐 찾아온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전기(前期) 중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 나는 불행했다. 연애할 때 애인이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을 때 불행했다. 결혼 후 이혼을 생각하기 시작하며 별거 생활에 들어갔을 때 불행했다. 치과의사의 어이없는 실수로 2년 동안이나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멀쩡한 이빨 4개를 뽑게 되고 또 그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고생할 때 불행했다.『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때문에 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전공과목 강의권을 박탈당했을 때 불행했다.『즐거운 사라』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됐을 때 불행했다. 또 그 후유증으로 장기간의 재판과 대학에서의 불안한 처지가 불행했다.
위에서 열거한 행, 불행의 감정을 느꼈던 경험들은 대개가 다 ‘극도의’ 감정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사실 ‘대충 행복하고’ ‘대충 불행한’ 느낌을 받았던 때가 훨씬 더 많다. 가령 내 입에 딱 들어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될 경우 나는 행복했다. 내가 완전히 폭 빠져 버릴 만한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웬만큼 관능적 매력을 가진 여자와 애무를 나눌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행복했다. 밀렸던 원고를 다 쓰고 났을 때 나는 행복했다. 한 폭의 그림을 완성했을 때도 나는 행복했다. 10·26 사태 이후 당장 민주화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을 때 나는 행복했다.
대충 불행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때도 많다. 감기 등 자잘한 병이 너무 오래갈 때 나는 불행했다. 오랫동안 데이트 한 번 못해 보고 고독에 찌들어 있을 때 나는 불행했다. 장래에 대한 불안(즉 취직이 안될 것만 같은 예감)에 휩싸여 있을 때 나는 불행했다. 만나던 여자가 싫어지긴 했는데 막상 헤어지는 절차가 두려워 건성으로 데이트를 할 때 나는 불행했다. 보기 싫은 사람과 직장에서 늘 만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을 때 나는 불행했다. 내가 쓴 작품이 인정을 못 받을 때 나는 불행했다. 독재 정국이 굳어져갈 때 나는 불행했다.
일체개고(一切皆苦).. 그 모든건 꿈이었을까?
좀더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 보자.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나는 과연 진짜로 행복했던가? 가만히 따져 보면 그건 행복한 감정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무난히 치뤄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대학에 전임으로 취직이 되었을 때 과연 나는 진짜로 행복했던가? 그것 역시 “이젠 겨우 내 힘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됐구나”하는 정도의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쫓아다니던 여자와의 데이트가 이루어졌을 때 과연 나는 진짜로 행복했던가? 그건 ‘승부욕’에 따른 순간적 성취감 비슷한 것이었지 진짜 행복감은 아니었다. 첫 데이트가 이루어진 후, 나는 계속 노심초사 그 여자의 마음을 내게 확실히 묶어 놓으려고 초조감에 넘쳐 안달복달하는 기간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 나는 과연 진짜로 행복했던가? 물론 명예욕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는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한 기분이라기 보다는 새디스틱(Sadistic)한 만족감에 가까운 것이었다. 새디스틱한 만족감은 곧바로 찝찝한 후유증으로 이어진다. 혼자서 자족(自足)하는 만족감이 아니라, 끊임없이 승부를 계속해야만 하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戰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손톱을 길게 기른 여자를 만났을 때 나는 과연 진짜로 행복했던가? 확실히 행복하긴 했다. 그렇지만 너무나 잠깐이었다. 그 여자가 오로지 손톱만 길게 기르는 일에 전심(專心)하는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손톱이 긴 인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게서 온몸으로 사랑 받기를 원하였고, 따라서 나는 정력으로든 선물로든 그 여자에게 끊임없이 가식적인 ‘사랑’을 표시해야만 했다.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또는 결혼을 하고 난 직후에 과연 나는 진짜로 행복했던가? 그것 역시 승부욕에 따라온 성취감 같은 것이었지 정말로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다. 상사상애(相思相愛)하는 연애 과정을 거쳤다면 조금 문제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있어 결혼은 나의 고집스런 구애의 결과였을 뿐, 두 사람 사이의 일체감을 잠깐이라도 경험한 뒤에 자연스럽게 추진된 결합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불행했을 때의 느낌은 아주 생생하게 다가오고 또 그 느낌도 오래 갔다. 그래서 나는 일단 석가모니가 말한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말을 십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러셀의 엉터리 행복론
이상하게도 이 세상엔 행복에 관해서 쓴 글은 많아도 불행, 특히 ‘고통’에 관해서 쓴 글은 거의 없다. 내가 악성 치조염(齒槽炎)에 결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게다가 괴로운 두통으로 연일 고생할 때, 나는 ‘통증(痛症)’에 대해서 쓴 글이 없나 하고 찾아보았다. 그런데 고통에 관해서 쓴 글은 많아도 모두가 ‘마음의 고통’을 소재로 했을 뿐 육체적 고통을 소재로 한 글은 없었다.
꽤 유명한 행복론인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는 인간을 불행으로 이끄는 여러 요인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그런데 ‘질투’나 ‘이기심’ 등 모두 다 마음에 관한 것들 뿐이었지 육체적 고통에 관계된 것은 하나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러셀의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비극적 플롯을 택하고 있는 소설책을 봐도 대개가 다 주인공이 겪는 ‘마음의 고통’을 그리고 있을 뿐이다. 설사 주인공이 병으로 일찍 죽는다 해도 모두 다 ‘곱게 죽는 병’만을 소재로 하고 있다. 폐병, 백혈병 등이 그것이다. 교통사고로 죽는 경우에도 “죽었다”는 표현만 나올 뿐 육체적 통증을 자세하게 묘사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행복에 관해서 쓴 그토록 많은 글 가운데 육체적 느낌으로 오는 행복감을 묘사하고 있는 글은 드물다. 대개가 다 ‘마음의 행복’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사랑을 줘 보세요, 그러면 행복해집니다” 등이 그것인데, 도무지 아리송하기만 한 거짓말들이다.
남에게 베풀어주고 나서 느끼는 행복감은 건방진 시혜 의식(施惠意識)에 따른 새디스틱한 만족감일 뿐 진짜 행복감은 아니다. 촛불을 켜고 있을 때 느껴지는 행복감은 센티멘탈한 만취 상태는 될 수 있어도 그리 오래 갈 수 없는 허망한 행복감이다. 사랑을 주기만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광신적이고 매저키스틱(Masochistic)한 신앙심에 근거한 것이라면 혹 몰라도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그런 행복감을 인간끼리의 애정 관계에서 찾아낼 순 없다.
고통에 관한 것이든 행복에 관한 것이든, 사람들은 대체로 진짜 핵심을 피해 가는 버릇이 있다. 이른바 지식인들일수록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명예욕’을 통해 행복감을 성취해 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명예욕의 성취는 진짜 행복감과는 거리가 멀다. 진짜 행복감이란 글자 그대로 ‘감(感)’으로 전달돼 오는 것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명예욕은 정신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신적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육체적 행복과 고통에 대한 스스로의 갈구나 공포를 애써 잊기 위하여,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진짜 핵심을 피해 나가려고 기도하게 된다.
나는 『권태』라는 장편소설을 통해 똥 누는 행위를 20여 페이지에 걸쳐 길게 묘사하고 거기에 곁들여 배변의 쾌감 역시 길게 묘사해 보았다. 사람의 일상 생활에서 배설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묘사한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오럴섹스’ 행위와 거기에 따른 쾌감 역시 길게 묘사해 보았는데, 그런 것을 시도한 소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증에 대한 묘사는 나 역시 너무 기분 나쁜 것이라 시도해 보지 못했는데,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시도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다. 아무튼 내게 있어 ‘행복감’이란 일종의 육체적 쾌감만을 가리킨다는 얘기가 된다. 반면에 불행하다는 느낌은 육체와 정신 양쪽으로 온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도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역시 육체적인 쪽이 더 강하다.
하루 종일 똥만 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진짜 ‘행복감’이란 지극히 순간적이고 찰나적으로 온다. 성행위의 경우를 두고 보아도,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은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놈의 오르가슴이 너무 짧아 나는 ‘긴 손톱’등의 페티쉬(Fetish)를 통한 그만하면 꽤 오래 가는 지속적인 ‘관능적 쾌감’에 눈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완벽한 ‘생물학적 로보트’가 나오지 않는 한, 그것의 실현 또한 현실에서는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손톱을 길게 길러 주기만 하는 여자’를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긴 손톱’의 대가로 나는 여자에게 ‘성적 만족’을 선물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자에게 성적 만족을 주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 안쓰러운 ‘순간적인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그 다음에 대안으로 착안한 것이 바로 ‘집필 행위에 의한 대리배설적 쾌감’이다. 그만하면 괜찮은 쾌감이고 꽤 지속적인 쾌감이라고 생각됐는데, 이번엔 ‘외설’이라는 이름의 구설수가 나를 감옥소에 처넣는 형태로까지 따라와 그것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성(性) 아니면 식(食)이라, 식욕을 통한 관능적 쾌감의 충족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만성 소화불량이라 그런지 식도락과는 거리가 멀다. 로마 시대의 식도락가들은 미각의 쾌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해 가며 하루 밤의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나뿐 아니라 소화가 잘되는 사람에게도 지금은 불가능한 행복추구행위일 것이다. 배변 행위를 통한 행복감의 획득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똥만 눌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가 육체적 쾌감을 통해 그만하면 진짜로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우는 ‘오랜 허기증’ 끝에 찾아오는 ‘급속한 포만감’ 비슷한 경우에 한정되는 게 아닌가 한다. 먹는 경우를 두고 말한다면 오랫동안 갈증에 시달리고 난 후에 마시는 시원한 냉수의 맛과 같은 것이고, 싸는 경우를 두고 말한다면 오랜 변비 끝에 누게 되는 시원한 설사 같은 것이 된다. 성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오랜 성적 고독 끝에 나누게 되는 애무 또는 살갗 접촉이나 성적 교접 같은 것이 거기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일체의 행복감은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 비가 ‘단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마’나 ‘폭우’로 이어지면 오히려 고통스럽기 마련일 터이니, 어쨌든 행복감은 순간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안타까운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연애 행위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어떤 상대방을 공략할 경우, 상대방이 애정의 포만감 상태에 있다면 아무리 애써 구애하고 하소연하고 아부해도 말짱 ‘헛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사랑에 굶주린 상태에 있을 때 공략하면 단 한방에 넘어간다. 그것은 이쪽 역시 마찬가지인데, 워낙 오랫동안 사랑에 굶주린 상태에서는 손톱이 길든 짧든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았고 그저 대충 관능적이면 되었다. 물론 그런 상대와 하게 되는 연애 행위는 아주 짧게만 지속된다. 하지만 어쨌든 순간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는 있었다.
명예욕의 충족에 의한 정신적 행복감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대학 입시에 합격했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괴롭기 짝이 없는 오랜 수험 생활 끝에 찾아온 순간적인 행복감일 뿐이었다.
정치적 분위기의 쇄신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행복감은 역사적으로 볼 때 참담한 불행감 또는 허탈감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10·26 후 ‘서울의 봄’이 찾아오긴 했지만 금새 광주의 비극이 일어났다. 구제도의 오랜 압제 끝에 찾아온 프랑스 혁명은 곧바로 로베스 피에르 등의 독재정치에 의해 ‘피의 단두대’로 이어졌다. 제정러시아의 붕괴로 인한 민중들의 행복감은 곧바로 스탈린의 무자비한 독재로 박살이 났다. 1930년대의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출현을 ‘가뭄 끝의 단비’로 보았지만, 곧바로 2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 무진 고생을 해야 했다.
권태와 매저키즘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순간적인 행복감’이나마 맛보려고 바득바득 애를 쓴다. 그래서 스스로 일부러 ‘고통’을 야기시키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매저키즘(Masochism)의 심리다.
죽은 뒤 천당에 가기 위해서, 아니 죽은 뒤 ‘순간적으로’ 천당을 구경하는 행복감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기독교인들은 살아 있는 긴 세월 동안 ‘가난’이나 ‘핍박’ 등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핍박이 없을 경우 일부러 핍박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그 좋은 예가 바로 ‘수도원’ 제도의 고안이다.
그러므로 매저키즘의 심리는 고통을 통해 무조건 기쁨을 느끼는 심리는 아니다. 매저키즘이란 말을 만들어 낸 장본인인 오스트리아의 작가 마조흐(S.Masoch)가 쓴 소설 『모피코트를 입은 비너스』에 나오는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반다’가 자기를 채찍질하며 괴롭힐 때 기쁨을 느끼진 않는다. 그는 그저 참고 기다릴 뿐이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녀가 긴 가학(加虐)행위 끝에 결국 자기를 불쌍히 여기게 되어 베풀어주는 한 순간의 키스와 애무이다. 그러한 애무는 순간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을 두제곱 세제곱으로 늘려 주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경우도 그렇다. 북한의 인민들은 ‘고깃국에 이밥’을 먹는 그 순간을 50년 가까이 기다려 왔다. 그러므로 그 동안의 고통이 아까와서라도 지배그룹의 내분 등 특별한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얼마든지 더 기다릴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 순간을 2천년이나 기다려 왔다. 2천년에 비하면 50년 쯤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고깃국에 이밥’을 먹는 순간 북한 정권은 무너진다. 그러므로 북한의 지배자들은 괴롭다.
매저키즘을 없애 버리는 방법은 ‘순간의 행복감’을 없애 버리는 길 밖에는 없다. 말하자면 ‘지속적인 행복감’으로 대체시키는 것이다. 만약 대학 입시를 없애 버리면 수험 생활의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인내가 가져다 주는 매저키즘적 충족감이 없어져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인생이 너무 무미건조해진다. ‘권태’ 역시 참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프리섹스’가 신기루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리섹스보다는 에로티시즘 예술을 통한 자위행위적 대리 배설이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쨌든 우리는 순간적인 행복감을 살아서 안되면 죽은 뒤에라도 맛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목숨을 지탱해 가고 있다. 윤회의 개념은 바로 그래서 나온 것일 터이다. 그러므로 인생 자체는 어쨌든 비극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일체개고(一切皆苦)’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비교적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관능적 쾌감만이 행복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독신 상태로 있는 지금의 내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필화 사건 등으로 골치가 아파 근래 몇 년 동안 연애를 못해 보고 있는 게 ‘억울한 고통’이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생활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늙은 뒤의 노후(老後)가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가 중요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야말로 진짜 간교한 매저키스트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 순간 찾아올지도 모르는 관능적 법열감을 위해 참고 기다리는 고통을 계속 그럭저럭 감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바로 이런 상태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애정을 나눌 특정한 상대방이 없이 ‘텅 빈 상태’야말로 섹슈얼 환타지(Sexual Fantasy)를 충족시킬 수 있는 스릴 있고 기대감 넘치는 쾌감을 가져다 준다는 뜻이 아닐까.
젊은이들의 육체주의 문화
지금 우리 사회는 국민 개개인이 정신적인 데서 행복감을 찾는 게 아니라 육체적인 데서 찾아보는 시대로 접어 들어가고 있다. 어쨌든 굶어 죽을 걱정이 일단은 없어졌고, 대가족 제도가 붕괴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흔히 얘기되는 ‘신세대 문화’의 요체는 내가 보기에 ‘육체주의 문화’에 다름 아니다. 육체적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만이 선(善)이요, 미(美)요, 정의(正義)라는 생각이 차츰 젊은이들의 의식 세계에 파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6년 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주장했고 또 그것을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로도 형상화시켜 봤던 육체 중심적 쾌락주의가 이제야 비로소 서서히 싹을 틔워 나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말세의 징조라고 개탄, 한탄해대는 사람들이 꽤 많긴 하다. 하지만 도저히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느린 상태일 망정 우리 사회는 결국 육체주의 문화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리라 본다.
앞서 말했듯 육체적 행복감 역시 순간적인 것이요, 찰나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가뭄 끝의 단비’를 기다리며 긴 고통의 순간들을 참아내는 데는 정신주의 문화보다는 그래도 육체주의 문화가 낫다. 정신적 매저키즘은 이성과 합리성을 부정하는 중세기적 금욕주의나 봉건적 권위주의의 사유 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뭄 끝의 단비’가 아니라 ‘가뭄 끝의 말라죽음’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행복론’은 정신보다는 육체적 메카니즘 위주로 씌어져야 한다. 육체적 행복감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데서 정신 우월주의가 나오고 거기에서 다시 종교적, 정치적 행복감이나 명예욕의 성취에 따른 행복감 따위가 나온다. 그러다 보면 중세의 암흑시대가 다시 도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갖가지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치적 독재가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수적 민족주의 역시 정신 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가장 고약한 형태인데,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나라처럼 ‘민족문학’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상황이 몹시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는 정신적 행복감 뿐만 아니라 ‘집단적 행복감’ 역시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행복감은 집단적 행복감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개인적 행복감’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철저한 개인주의적 사고로 무장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그나마 문명을 발전시켜 온 인류가, 집단을 유지시켜 나가긴 하되 그 안에서 개인주의를 얼마나 최대한으로 허용할 수 있느냐 여부에 우리 인류의 행복한 미래 또는 불안한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본다.
나르시즘적 쾌감의 시대
아울러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괴상망측하고 변태적인 방법으로 관능적 쾌감(또는 행복감)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그 사람의 행복 추구 방법을 나무라서는 안 된다. 내가 20대 때엔 남자들의 장발이 유행이었는데 머리를 길게 기름으로써 느끼게 되는 관능적 나르시즘의 행복감을 정부 당국은 ‘퇴폐’라는 이름으로 무차별 규제해 버렸다.
앞으로 관능적 쾌감은 양성(兩性)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남녀가 각 혼자의 나르시즘적 형태로 더 많이 찾아올 것이 틀림없다. 어떤 여자는 손톱을 길게 기르거나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함으로써 노출증에 의한 관능적 행복감을 스스로 만끽할 것이고, 어떤 남자는 여자처럼 야하게 화장하고 다님으로써 관능적 행복감을 만끽할 것이다. 말하자면 전신(全身)이 성감대가 되어 나르시즘적 쾌감을 혼자서 즐길 수 있게 되는 사회가 21세기에는 반드시 도래한다. 그렇게 되면 명예욕의 성취 등을 통한 정신적 행복감이 육체적 행복감보다 열등한 행복감으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그 때 비로소 인류는 승부욕의 충족에 따른 행복감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어 ‘전쟁’이라는 괴상한 스포츠를 그만두게 될 것이다.
또한 고통은 어떤 고통이든 절대로 아름답지 않은 것이 되어, ‘고생 끝에 성공’이니 ‘의미 있는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암이나 에이즈도 정복될 수 있고 광신적 종교도 사라질 수 있다. 모든 고통은 인과응보의 소산이거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진통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말 그대로 ‘고통’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를 서둘러 준비하기 위해 ‘정신’을 끊임없이 해체, 파괴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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