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일 일요일

왜 생명체는 섹스를 발명했을까

인간은 왜 사랑(섹스)해 후손을 낳고 죽는 것일까? 생물이라면 본능적인 것이지만 사랑과 죽음은 유성생식 생물에게만 나타나는 숙명적인 현상이다. 섹스의 대가가 죽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성생식을 하는 아메바나 효모 같은 하등동물에는 죽음도 사랑도 없다. 아메바는 환경만 적당히 주어지면 자신의 몸을 둘로 갈라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낸다. 이때 만들어진 두 개체는 같은 유전 정보를 갖는 복제품이다. 물론 아메바도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갈라져 나간 복제품이 대를 이어 수억 년 동안 계속 복제품을 남기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상당수의 동물들은 왜 이런 편한 방법을 놔두고 섹스와 죽음을 택하게 되었을까? 유성생식은 무성생식보다 다양한 자손을 만들 수 있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쉽다는 게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력한 학설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기생충,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기생생물의 침입에 대한 방어 수단이라는 학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정자와 난자는 우리의 몸이 만들어 낸 가장 신선한 세포이다. 몸은 바이러스나 기생충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정자와 난자는 감염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아기는 기생충에서 자유롭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낡고 병든 ‘생존 기계’에 목 매는 것보다 낡은 기계는 버리고 새로운 기계로 갈아타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 같은 기생충과의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지금도 인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다.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은 1년 동안 유럽에서 2천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무서운 에이즈로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 수명은 거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우리의 몸에는 지난 수십억 년 동안 기생충과 전쟁을 벌여 온 상처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조상이 기생충과 맞서 싸우면서 습득해 유전자를 통해 물려준 면역 체계가 그것이다. 천연두에 대한 면역 능력이 없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컬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유럽인들이 퍼뜨린 천연두에 맥없이 쓰러져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때로는 기생생물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우리 몸의 부속품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포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수십억 년 전 인간이 하찮은 하등동물이었을 때 우리 몸에 기생해 살림을 차렸다. 세포 내 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미토콘드리아만이 자신의 유전 정보를 지닌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기생의 증거다. 다행히 미토콘드리아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걷고 뛸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인간의 염색체에는 박테리아 유전자와 비슷한 유전자가 200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유전자들은 인간이 아직 하등한 무척추동물이었을 때 박테리아 감염 과정에서 우리 몸에 들어와 살림을 차린 것이다. 우리의 몸은 박테리아와 하등동물의 유전자를 짜깁기해서 만든 셈이다.

때로는 바이러스가 여러 숙주를 옮겨 다니면서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사람한테 옮기기도 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유전자를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잠자고 있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일도 한다. 인간은 바이러스에 맞서 면역 체계를 만들어 전쟁을 벌여 왔지만 한편으로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와 진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 항문을 가렵게 했던 기생충도 우리 몸에 꼭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요충은 항문을 가렵게 하지만 그다지 위험한 기생충은 아니다. 일부 의사는 우리 몸이 이 기생충과의 싸움을 통해 조금씩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유아기 때는 오히려 우리 면역 체계의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생생물은 인간을 몰살시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진화시켰고 성을 발명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자가 먼저 만들어졌을까 아니면 여자가 먼저 만들어졌을까? 여자가 먼저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있다. 성경에는 아담의 갈비뼈를 빼서 이브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이브의 갈비뼈를 빼서 아담을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태아는 자궁에서 임신 8주가 되기까지 성기에 차이가 없다. 임신 8주가 지나면서 Y염색체에 존재하는 TDF라는 고환 결정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만들어져야 태아는 남성의 특징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여아의 경우는 Y염색체가 없기 때문에 원래 인체의 설계도가 계획한 대로 태아가 만들어진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차에 비유한다면 여자는 원래의 궤도를 따라 그대로 달리다 보면 만들어지는 것이고 남자는 궤도를 수정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기본형은 여성이고 남성은 옵션형이다. 남성이 옵션형이라고 해서 자동차에 ABS브레이크나 에어백이 붙은 것처럼 성능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오히려 남성 유전자가 여성 유전자보다 돌연변이가 많고 불안정하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과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생식세포가 될 염기서열의 돌연변이 빈도를 측정한 결과, 남성이 여성에 비해 2배 정도 높은 돌연변이율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여성은 잘 견디는 반면 남성은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뜻이다.

정자를 만들려면 난자세포보다 훨씬 많이 분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돌연변이가 축적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Y염색체가 앞으로 500만 년쯤 후면 소멸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단 남성의 염색체인 Y염색체는 자신의 중요한 유전자를 일찌감치 복사해 두었다가 유전자에 결함이 생겼을 때 이를 치료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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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의 발견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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