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고해(苦海)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이 어렵다는 이 쉬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에,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와 어려움이 가혹하다고 불평한다. 삶이란 문제의 연속이니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통스런 삶의 문제들을 안고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의 승패는 문제들을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렸다. 칼 융이 말했듯, "노이로제(신경증)란 항상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살아가는 훈련에 필요한 기술이 바로 사랑이다. 오래 참고, 노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희생적인 고린도 전서의 사랑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사랑에 대한 '신화'일 뿐이다. 희생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우린 자신의 발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전에도 똑같이 기여해야 한다.
1. '사랑에 빠진다'는 것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성적으로 자극되었을 때에만 나타난다. - 사랑에 빠지는 경험의 특징인 황홀한 사랑의 느낌은 항상 사라지기 마련이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짝을 구하려는 번식 본능 때문이다.
2.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
'하늘이 정해 준 베필’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이러한 지독한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는 아마도 사랑에 빠지는 경험이 결혼으로 향한 사회의 음모를 격려하고 또 정당화시켜 국가체제와 인류의 존속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3. 성행위 자체는 사랑의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 일시적으로 자아영역이 붕괴되기 때문에 우리는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창녀에게도 '사랑해' 라거나 '오, 하느님'이라고 외치지만 그것은 단지 순간일 뿐이다.
우리가 일상 말하는 남녀간의 사랑이란 누구나 한 번은 앓는 열병과도 같다. 그러니,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유독 심하게 그 병을 앓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개념과 다른 `참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물론 참사랑이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사랑의 감정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참사랑은 느낌이 아닌 하나의 행동이고 하나의 활동이다. 그리고, `게으름`(역시 일반적 의미와는 다르다.)은 원죄로써 참사랑의 행동을 방해한다.
인간성장에 무한정으로 필요한 사랑, 특히 부모의 사랑은 유아기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린시절 애정결핍의 트라우마는 성격장애, 신경장애(노이로제), 심하게는 정신분열의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애정결핍이라는 외상이 누구에게나 상처로 남지는 않는다. 왜 누구는 아파하며, 왜 누구는 정상적인 삶을 아주 잘 영위하기도 하는 것일까?
명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한가지 대안으로 엔트로피라는 개념을 빌려오고자 한다. 우리 정신 속에서 작용하는 엔트로피는 성장을 방해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태어난 진창구덩이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보다 부지런히 어려운 길을 선택하도록 부추기는 어떤 본능이 내재해 있어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처받지 않고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주어진 어떠한 환경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인생을 획득하거나 잃은 데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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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스캇 펙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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