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외롭지만, 둘이 있으면 더 외롭다.'
사람들은 사랑의 결핍에서 외로움의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외로움의 본질엔 사랑의 부재가 아닌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시킬 수 없다는 절망이 자리 잡고 있다.
바람둥이들의 잠언에 의하면 애인이 없는 상대보다 애인이 있는 상대를 유혹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아무리 완벽한 애인이라고 해도 상대가 원하는 100%를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99%의 완성도가 있어도 모자란 1% 때문에 갈증을 느낀다. 바람둥이들은 그 틈을 노린다. 게임은 공정치 못하다. 99%를 해준 연인보다 단 1%를 제공한 사람과 바람이 나니까. 바로 그 1%의 결핍이 외로움을 가져온다. 1%라는 빈약한 퍼센티지에 숨어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깊은 아쉬움이다.
연인들의 일반적인 싸움 유형 중 하나를 떠올려보자. 몇 번의 설전이 오간 후 누군가가 허탈한 어조로 마침표를 찍는다.
"도대체 뭘 어떻게 더 해달라는 거야?"
대사를 내뱉은 사람은 자신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편 사람은 한숨이 나온다. 바라보는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연인에게 이해를 바라는 사람도, 연인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모두가 피해자인 이상한 법칙이다. 외모가 다른 사람은 생각도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한다. 외로움이란 사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연애의 초기, 서로에게 관용이라는 이름의 이해가 넘쳐나고 상대에게 착각을 일으킨다. '이 사람은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다'라는....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돌변한다. 연인으로서 권리를 획득하게 되면 이해보단 다툼이 많아진다. 그리고 상대의 관용이 사라진 자리에 외로움이 찾아든다.
어떤 바람둥이는 이렇게 고백했다. "연애가 시작될 때 상대가 내게 보여주는 그 놀라운 이해심에 중독돼 자꾸 새 사람을 찾는다"고. 토드 헤인즈 감독의 'I'm Not There'는 포크 가수 밥 딜런의 전기 영화다. 이 영화는 실재의 밥 딜런이 아닌, 미디어를 통해 허상의 이미지로 떠도는 밥 딜런을 묘사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벤 위쇼가 연기하는 랭보가 등장하는 신이다. 벤 위쇼는 스크린 밖의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다면,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괴로워진다면,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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