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16일 일요일

민족성, 문화는 불변인가?

때는 1915년, 호주 출신의 한 경영 컨설턴트가 당시 한 개발도상국에 가서 공장을 시찰한 후 그 나라 관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국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 순간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이 깨져버렸다. 임금이 싸지만 생산성이 낮아서 결국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노동자들은 시간 개념이 전혀 없고 아주 태평하며 만족스럽게 사는 것 같다. 몇몇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자기네 민족성이 원래 그렇다며 바꿀 수 없다더라"

이 호주 출신 컨설턴트는 당시 간접적으로 그 나라 노동자들이 너무 게으르다고 질타하고 있다. 이 나라가 가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민소득이 당시 호주의 1/4에 불과했다. 민족성이 원래 그래서 바꾸기 어렵다는 것도 맞는 말인 듯 하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라는 저서에서 밝혔듯이 다른 문화에 비해 경제 발전에 보다 적합한 문화들이 있다.

위에서 말하고 있는 국가는 1915년의 일본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여유있게 일하기로 세계 둘째가라면 서러울 호주 사람이 일본인을 게으르다고 하다니 좀처럼 믿기 힘들지만 100년전의 일본인은 서구인들에게 분명 게으르게 비쳐졌다. 미국인 선교사 시드니 굴릭도 1903년 쓴 '일본인의 진화'라는 책에서 일본인이 "게으르고 시간흐름에 전혀 무관심한 인상을 준다"라고 썼는데 그가 일본에서 25년간 살았음을 감안하면 이렇게 느낀 서구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파비안 사회주의 지도자 비어트리스 웨브는 1911년에서 1912년 사이 아시아를 여행하고 난 뒤 일본인을 "지나치게 여가를 즐기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개인적 독립성(!)이 강한 사람들"로 묘사했다. 그녀는 또 한국인에 대해서는 "더러운 진흙집에 살면서 활동하기 불편한 더러운 흰옷을 입은채 배회하는 불결하고, 비천하고, 무뚝뚝하고, 게으르고, 신앙심 없는 미개인 1200만명"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심지어 "한국인들을 지금과 같은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단 동양 뿐만이 아니었다. 영국인들은 독일인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19세기 중반에 독일이 경제적 도약을 하기 전까지 영국인들에게 있어 독일인은 둔하고 굼뜬 사람들이었다. 게으름은 독일 민족 특성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어였다. 1820년대 여행작가 존 러셀은 독일인들이 "영리하지 못하고, 쉽게 만족하는 사람들로..... 빠른 인식능력도 없고 예민한 감수성도 없다"고 했다. 19세기 중반 또 다른 영국인 여행가는 "독일인들은 기업가 정신이나 활동성면에서 별로이며 새로운 일이나 기술을 추구하고 알아가는데 매우 더디다"라고 썼다. 아울러 19세기 초 영국의 여행자들은 독일인들이 부정직하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며 협동능력이 부족하다고 썼다. 오늘날 수많은 영국인들이 독일인들은 유전적으로 감정이 결핍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19세기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한번 생각해보라, 1세기 전의 일본인들은 근면하지 않고 게을렀으며, 충실한 일개미가 아니라 독립심이 지나쳤고,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적이었으며, 심각하다기보다는 실없었고, 높은 저축률로 대변되는 지금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생각없이 오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또 19세기 독일인들은 나태하고 개인적이었으며 감정적이고 어리석고 부정직하며 도둑질을 일삼았다.

일본인과 독일인들은 이렇게 나쁜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아니 또, 당시의 일본인 및 독일인들과 오늘날의 이들은 어떻게 이렇게 완전히 다른 것일까? 다시 말해 어떻게 이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민족성'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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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경제 기적 이후로 유교문화가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 원인이라는 주장이 널리 펴져나갔다. 유교문화에는 근면, 교육(인적자본), 검약(자본축적), 협동, 충성(기업 효율성)을 강조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경제기적이 있기 직전까지만해도 사람들은 이 지역의 발전지체를 희한하게도 유교 탓으로 돌렸다. 이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교는 분명 경제 발전에 불리한 측면을 여럿 가지고 있다.

우선 유교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상공업을 천시한다. 장인과 상인은 과거시험에 응시조차 할 수 없었다. 학자, 관료 집단은 청빈하게 살아야했고 돈벌이를 경멸하게 되었다. 이런 문화는 근대에도 적용되었다. 윗세대 부모님들은 자식이 엔지니어나 사업가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길 권장한다.

유교는 또한 독창성과 기업가 정신을 막는다. 특정 계층은 신분상승이 원천적으로 차단되고 충성에 대한 강조를 통해 독창성과 창의성을 눌렀다. 유교는 법치주의보다는 일개 주군에 대한 충성을 강조해서 전횡적인 독재에 취약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만일 통치자가 덕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찌해야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유교란 정확히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헌팅턴이 한국과 관련하여 표현한 것처럼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그리고 규율"을 중시하는 문화인가? 아니면 실용적인 직업을 멸시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고 법치주의를 거해하는 문화인가?


둘다 맞다. 앞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유리한 요소들만 뽑아낸 것이고 뒤의 묘사는 경제 발전에 불리한 요소만 뽑아낸 것일 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 문화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이슬람교는 다양성을 용납하지 않아 창의성이 결여되고 내세에 집착하게 만들어 자본축적을 어렵게 한다. 그밖에 여성의 활동제한이 많아서 여성의 교육이 제약되고 결국 미래 노동력의 질가지 떨어트린다.

하지만 이슬람 문화에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다른 면도 많다. 가령 이들은 문화와는 달리 고정된 사회적 계급이 없다. 그래서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은 합당한 보상을 받게된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는 유교와 달리 상인이나 공인을 천대하지 않으며 오히려 우대하고 권장한다. 예언자 무하마드 자신이 상인이었다. 이슬람교는 상인의 종교이다보니 태생적으로 계약에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합리적인 사고와 학습을 강조하고 기독교 문화보다 이방인에 대해 매우 관대하다.

이렇듯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확실하게 나쁜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 속에 들어있는 원료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문화에 근거해 경제 발전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이런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를 통해 확인된 바에 근거한 사후 정당화에 지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특질로 자주 인용되는 게으름에 대해 살펴보자. 부자 나라 사람들은 으레 국민성이 게으르므로 나라도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단히 가혹한 조건에서 장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들이 게을러 보이는 것은 시간에 대한 산업사회적인 개념이 부족하기 떄문이다. 기본적인 연장이나 단순한 기계만 가지고 일을 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킬 필요가 없다. 반면 자동화된 공장에서는 매우 엄격해야한다. 부자나라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이런 차이를 게으름이라고 멋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또, 가난한 나라에서 게으르게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빈둥거리길 좋아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그러한가?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다. 이들이 게으르게 지내는 주된 원인은 가난한 나라의 경우 실업 혹은 준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있다. 게으른 문화를 가진 가난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부자 나라로 이주한 뒤에 현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독일인들의 부정직함은 어떠한가?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비윤리적이거나 불법적인 수단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회적으로 가난으로 비롯된 이런 수단이 관용적으로 용인되고 문화적으로 수용하기까지 한다.

감정과잉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합리적인 사고에 대한 반대표현으로서 감정 과잉이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합리적 사고는 대개의 경우 경제발전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흔히 목격되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나 태평하게 사는 것 역시 경제적 조건이 빚어낸 결과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경제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울 필요성이 별로 없다. 사람들은 기술발전이나 수입품의 공습같은 예기치 못한 충격을 자주 겪을 때에만 미래에 대한 계획(저축, 보험, 투자 등)을 세우기 때문이다.

- 나쁜 사마리아인들 280~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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