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퓰리처상과 노벨상에 빛나는 대문호 헤밍웨이..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그만큼이나 죽음을 가까이 의식하며 살아온 작가도 드물것이다. 실제로 그는 수차례의 죽음의 문을 경험했다.
그의 삶은 모험과 전쟁으로 가득했고 삶과 한판 승부를 겨루는 폭력과 역동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평생 전쟁에 몰두했다. 이태리,터키,노르망디,중국.. 전쟁이 있는 곳에 그가 있었다. 전쟁의 허무 『무기여 잘 있거라』와 동지애『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는 전쟁 문학의 걸작을 낳았다.
전쟁이 없을 때도 그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대서양에서 거대한 블루마린을 낚았고, 아프리카에서는 사냥을 즐기고, 스페인의 투우, 권투도 즐겼다.
<우리의 시대>,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을 통하여 피츠 제랄드와 함께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의 대표 주자가 된 헤밍웨이의 문학적 영감의 근원은 자신이 몸소 체험한 죽음과 전쟁이었다. 헤밍웨이의 궁극적인 관심은 죽음의 문제였던 셈이다. 그는 회고했다.
`나는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내가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잠들게 되면 내 영혼이 육체를 빠져나갈 것 같은 생각이 엄습해서였다. 불을 켜 놓거나 술을 마셔야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무자비하게 자신을 끝냈다. 1961년 7월 2일 아침, 아이다호 주 헤밍웨이의 자택에서 그는 입 속에 총구를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로써 `그 망할 놈의 어마어마한 공허감과 허무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라던 그의 말도 과거가 되고 말았다.
<노인과 바다>는 다름아닌 그의 말년의 자화상이다.
쿠바의 가난한 어부 산타아고는 대양에서 마침내 거대한 블루마린 한 마리를 꿰지만 이 물고기와 밤과 낮이 바뀌는 동안 필사적인 삶과 죽음의 투쟁을 계속한다.
`네가 날 죽이고 있구나. 하지만 너는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난 너처럼 거대하고 아름답고, 태연하고, 고결한 존재를 보지 못했다. 형제야 이리 와서 날 죽여라. 누가 죽이고 누가 죽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그리고 산티아고는 결국 죽음마저 초월한 두려움없는 초탈의 경지에 도달한다. 비록 현대인에게는 상어에게 뜯겨 뼈만이 앙상한 블루마린이 안타까웠겠지만 그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헤밍웨이 그 자신의 모습도 낚시배 옆구리에 앙상한 뼈만 남은 고기를 달고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 그 자체였을까? 그리고 그는 안식속에서 사자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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