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 이후 IMF의 차관제공 조건이 긴축정책 위주로 이루어지면서 차관제공을 받은 각 국가들에서 대중적 불만이 빠르고 고조되었다.
7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가 외채를 줄이기 위해 IMF의 조건에 맞춰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저축을 늘림으로서 채권자들이 상승한 석유수입품 가격을 상쇄할 수 있게끔 하려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리고 1976년 3월 8일 코르도바의 노동자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임금을 동결한 데 맞서 180일간 파업을 진행했다.
1976년, IMF와 미국,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는 이집트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식량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1977년 1월 이집트에서 정부가 주요 식품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하기로 결정하면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1981년 7월 1일 모로코 정부는 IMF의 차관을 받는 조건으로 식품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했다. 그러자 카사블랑카에 있는 민주노동연합은 총파업을 촉구했다. 보조금을 삭감하자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버터 76%, 밀가루 40%, 설탕 37%, 식용류 28%에 이르렀다. 파업이 빈민가 청년 수천명이 가세하면서 폭동으로 번졌고 정부집게 66명, 야당 집계 637명이 사망했다. 데부분은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이었다.
1984년 4월 24일 도미니카 공화국 각 도시는 정부의 긴축재정에 맞서 파업으로 저항했다. IMF의 차관조건때문에 정부는 수입품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하고 의약품 가격을 200%까지 올렸다. 저항은 폭동으로 번졌고 군대의 과잉진압으로 50명이 사망하고 4000명이 구속되었다.
1988년 4월 석유생산품에 대한 보조금 철폐로 인한 나이지리아의 저항은 2009년 현재까지 진행중이다.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석유가격뿐 아니라 의료 서비스를 악화시켰고 식품에 대한 보조금이 철폐 되었다.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까지 민주주의 기반이 탄탄했고 산유국으로서 재정도 풍족했다. 그러나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부채위기가 끝나갈 무렵 해외부채가 330억 달러에 이르렀다. IMF차관 이후 정부 보조금이 곳곳에서 삭감되었는데 유가 상승이 특히 심했다. 버스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1989년의 저항시위에서 수백명의 사람이 사망했다.
1998년 봄 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해 인도네시아에서는 IMF명령에 따라 정부보조금을 삭감했고 이로 인해 엄청난 사회불안과 폭동이 발생했다. 이유는 역시 식품과 석유에 대한 보조금 삭감이었다.
많은 제 3세계 국가들은 1969~1970년대에 시민들과 정부가 암묵적인 사회계약을 맺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은 해외경쟁에 맞서 자국산업을 보호할 목적으로 수입대체정책을 추구했다. 상인과 관료, 자본가, 도시 상인 및 중산층과 노동자들이 발전주의 동맹이 맺어지면서 이 수입대체 정책이 공고화되었다. 그런데 차관이 늘어나고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실시되면서 기존에 암묵적으로 동의된 가치 혹은 역사성이 붕괴되고 새로운 역사성이 강제되면서 정부가 사회계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모든 비극의 원인이 여기에서 출발하게된다.
최소한 수만명에서 1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저항과정에서 죽어갔다. 라틴 아메리카의 어린이들이 구조조정의 결과로 인한 보건 프로그램 감소, 식료품 가격 폭등, 사회안전망 축소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불경한 삼위일체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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