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발현된다. 언어라는 거울은 그러나, 이 세계를 있는 그래로 반영하지 못한다. 즉, 우리 사유 자체가 현실세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언어를 바탕으로 현실을 탐구하려는 노력은 항상 오류로 가득차게 된다. 왜일까?
보통 문장은 주어+술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꽃이 핀다`라는 문장을 보자. `꽃`과 `핌`이라는 것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꽃`은 이미 피어있는 상태요, `핀다`는 피고있는 동작의 와중이다. 그렇다면 `봉우리가 핀다`는 어떤가?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주어와 술부로 이루어진 모든 언어는 이런 오류를 가지고 있다. `비가 온다.`, `철수가 온다`, `내인생을 살아간다.`, `불 났다.` 등등등...
즉, 주어와 술부에서 각각은 `고정된 어떤 개념`을 상징하고 있는데 주부는 고정된 개념을, 술부는 변화하는 세계를 상징하기 때문에 둘을 반복하면 이것은 주어와 술부가 일치하지 않는 오류를 내포한다. 차라리 동양의 언어체계처럼 주부를 생략하고 술부로만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우주 이벤트의 반영일 수 있다.
서양언처의 기본 1형식 문장에 반드시 주어(Subject) + 동사(Verb)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주(主)`를 기본적으로 상정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주(主)`는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사물의 근본적인 상태, 내지는 온 우주의 주인 즉, 신(神)에 대한 서양사상의 내면이 자리잡고 있다. 즉, 끊임없이 변화하며 엔트로피의 증가 흐름이 이루어지는 현상, 이름하여 형이하학의 세계와는 `별.도.로` 불변의 본질개념(우파니샤드의 Atman), 현실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기본적 대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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