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자유의지.. 존재하나?

자유의지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차별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왜 기계는 마음대로 다뤄도 되지만 인간은 그래서는 안 되는가? 이는 바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는 스스로의 존엄성을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관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대한 바람과 절규는 실로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실제 인간과 동물이 소유하고 있는 자유의지는 정해진 규칙대로 뉴런들이 움직여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기계적으로 작동함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에 예측불가능하고 복잡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뉴런의 회로 자체가 결정론적 예측불가능한 성질을 같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이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예측불능성이 뇌회로에서 사고와 행동의 예측불능성을 만들어 내어 그 사람이 규칙에 지배받지 않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자유의지의 원천은 사실상 결정론적 기계에서 만들어지는 카오스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양자역학은 이러한 결정론적 가치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돌파구로 인식되어 왔다. 하이델 베르그의 불확정성 원리로 이것이 자유의지의 원천이라는 생각은 언뜻 보기에 대단히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에 뇌의 메커니즘과 생명현상에 대한 바탕에 깔린 기본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 보이는 정도의 예측불능성과 자유로운 행동들은 뉴런의 상호작용이 만드는 예측불능성에 의해서 충분히 만들어지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카오스가 뇌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벽히 결정론적이지만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생명현상과 일치한다. 우주상에 완벽한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난수(random number)가 존재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완벽히 우연적으로 혹은 완벽하게 어떠한 규칙도 따르지 않는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는 제한된 레벨 위에서의 자유의지와 같은 것이다. 일단 뉴런레벨로 오면 정해진 그 규칙을 따르는 것뿐이다.

이러한 자유의지를 만들어내는 뉴런의 연결구조를 정확히 알아낸다면 이를 전자뉴런을 갖는 기계회로에 그대로 적용시켜 기계스스로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자유의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기계는 사람과 비슷하게 예측불능한 다양한 행동을 하게 되고 기술이 정교하게 발달하게 된다면 사람과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 기계는 아마도 자신의 의지대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이 이미 결정된대로 작동된 결과일 뿐인가 아니가 하는 자유의지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기계에게 인간과 같은 권리를 줘야하는가? 미래에 등장할 자유의지 회로를 소유한 기계에게 어떠한 권리를 줘야 할 것인가는 과학소설과 영화등에서 이미 많이 다뤄온 문제이다. 그들에게 과거의 생물학적 인간과 동일한 권리를 줘야만 한다고 판단해야할 근거가 없는 것과 동시에 그 반대의 근거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반응한다면 그 기계는 논리적으로 이미 사람이다. 또한 사회적인 권리란 그 존재에 대한 과학적 사실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비중에서 온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 자기복제하며 자손을 퍼뜨리고 스스로를 보호할 물리적 힘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권리는 누가 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동물이나 기계와는 다른 존엄성을 소유한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헛된 몸부림은 과거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옮겨 갈 때나, 창조론이 만연한 때에 진화론이 새로 등장한 시기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적인 압박으로 대외적으로 거론되지 못하다가 차차 많은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되면서 널리 퍼져 나가고 세월이 흘러 과학적인 사실로 자리잡게 되고 사회적으로도 널리 인정된다. 현재 생명을 기계의 일종으로 보는 관점은 이미 첫 번째 단계를 지나 두 번째 단계에 진입한 상태이다.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에서 많은 과학적인 증거가 쌓여가고 있고, 인공생명 분야가 탄생하면서 생명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널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널리 인식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거 지동설이나 진화론이 거쳤던 시간보다는 더 짧은 시간 내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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