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한때 우리가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징을 쉽게 정의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은 학습을 하고 동물은 본능에 따라서만 산다는 식이다. 인간은 도구를 쓰고 의식, 문화, 자아를 가지고 있으나 동물들은 그렇지 않다는 따위다. 그러나 점점 이러한 차이점들은 흐릿해지거나 종류의 차이가 아닌 정도의 차이로 보였다. 달팽이도 학습을 한다. 피리새는 도구를 사용한다. 까마귀는 더 나아가 도구를 직접 제작한다. 돌고래는 언어를 사용한다. 개들도 의식이 있다. 오랑우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며 강간도 행한다. 침팬지는 전쟁을 하며 고도의 정치를 한다. 일본원숭이는 문화적 기술을 후대에 전수한다. 코끼리는 다른 코끼리의 죽음을 애도한다.

동물이 각각의 과업을 인간만큼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때 동물들보다 딱히 나을 것이 없었는데도 점점 더 우수해지도록 압력을 받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어떠 인본주의자는 이러한 말을 궤변이라 치부하며 냉소할 것이다. 그는 오로지 인간만이 도구를 쓰고 만들 수 있다. 인간만이 어휘뿐 아니라 문법을 사용할 수 있다. 오로지 이간만이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공감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말은 괴상하게도 내게는 변명처럼 들린다. 내게는 인문과학에 젖어있는 인간의 본능적 오만에 전혀 신빙성이 없어보이는데, 그 이유는 인문과학의 요새 중 많은 것들이 이미 동물 챔피언들에게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의식에 대한 논쟁들은 대부분 의식이 인간에게 유일한 선험적 특성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개를 키워본 사람은 누구라도 알듯이 개도 꿈을 꾸며, 감정을 느끼고, 사람 개개인을 알아본다. 그러한 것들을 저절로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이 시점에서 인본주의자가 마지막으로 후퇴하는 보루는 `학습`이다. 나도 한 때 학습은 인간만의 우수한 특징이라는데 동의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대학의 리다 코스미데스 교수의 `적응된 마음`이라는 책을 읽고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리다 교수는 본능과 학습이 서로 다른 것이어서 본능에 의존해 온 동물은 학습에 의존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깼다. 리다 교수에 따르면 그 통념은 한마디로 거짓이다. 학습은 적응성이란 뜻이고 본능은 준비성이란 뜻이다. 아이는 언어를 무서운 속도로 배우고 날아오는 공을 피하기도 하지만 이는 따로 배운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공유하는(준비된) 가정 없이 어떻게 배울(적응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적응성과 준비성이 정반대라는 종전의 관념은 명백하게 틀렸다. 100년전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사람은 본능보다 학습능력을 더 많이 가진게 아닌 둘다 똑같이 많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비웃음을 샀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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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 리들리 `붉은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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