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평등과 자유에 기초를 두는 것으로 특정 인물의 본질에 대한 열광적인 긍정, 적극적인 교섭을 의미하며 두 당사자의 독립과 완전성에 입각한 인간 상호의 결합이다. 마조히즘은 사랑의 반대되는 성향이다. 한쪽의 복종과 완전한 상실에 입각해있기 때문이다.
사디즘 또한 사랑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당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본질은 지배로부터 얻는 향략이다. 그렇다면 혹시 사디즘이 권력에 대한 욕구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파괴적인 사디즘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욕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권력욕은 사디즘의 가장 중요한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다.
홉스 이래로 권력욕을 인간 행위의 근본적인 동기로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 파시즘을 겪으면서 그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새로이 고조되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거듭되는 권력의 승리에 감명받고 그것을 강력함의 상징으로 상각하며 마땅히 나서서 지배받기를 원한다.
내가 누군가의 목숨을 뺐을 수 있다면 나는 그보다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의미로는 힘에 대한 욕망은 ‘강함’이 아닌 ‘약함’으로부터 비롯된다. 개인적 자아가 고립되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 참다운 힘이 결여되어 있을 때 이차적인 힘을 얻고자 하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힘’이란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 어떤 자에 대한 힘의 소유로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일을 하는 힘을 소유하는 것, 실제적인 능력이 있는 것,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지배와는 관계없다. 그것은 능력의 측면에서 숙달을 뜻한다. 이렇듯 힘이란 ‘지배’와 ‘능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무능력이라는 말은 지배에 대한 사디즘적 노력을 유발한다. 개인이 자아의 자유와 완전성의 기초위에서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는 타인을 지배할 필요가 없어지고 권력을 추구하는 끈질긴 욕망도 사라진다. 성적 사디즘이 성적 사랑의 도착이듯이, 지배라는 의미의 권력욕은 능력의 도착이다.
‘사도마조히즘적’ 이라는 용어가 도착과 신경증과 결부되어있으므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사람을 가리킬 경우 이러한 용어대신 ‘권위주의적 성격’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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