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인간의 공격성에 대해 연구하고 걱정하며, 성선설인지, 성악설인지를 들먹이고, 이것이 본능이냐 아니냐 논의하는 등, 이를 어떻게든 알아내고 억압해보려고 무던 애를 쓰는 것 같은데, 기실 솔직한 심정을 말하라고 하면 공격성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가령, 인간의 공격성이 본능이라고 하더라도, 늑대사회가 위계질서 있는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듯 국가조차도 필요없는 고도의 조직화된 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다른데 있다.
밀그람의 `아이히만 실험`이 증명하듯, 위험한 것은 인간의 공격성 자체라기보다는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며 감수성의 결여이다. 적국의 도시를 융단폭격하는 폭격기 조종사가 모두 잔인한 사디스트는 아니다. 그는 명령에 복종해서 원자폭탄을 떨어트려 몇십만 명이나 되는 무고한 시민을 죽일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미워도 눈앞의 인간을 몽둥이로 때려죽이거나 전기톱으로 토막내 죽이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실제 피해량은 앞의 경우가 몇십만배나 크지만, 현대에 무서운 것은 잔인한 사디스트보다도 오히려 소심하고 직무에 충실한 유능한 관리였던 아이히만 같은, 권위의 명령에 무비판적으로 복종하는 얌전한 인간인 것이다.
잔인성의 경향이란, 참혹한 연쇄살인범과 보통의 시민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 둘의 유일한 차이는, 흉악범이 남달리 강한 잔인한 충동을 지녔다기 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행위는 본능적인 잔인성의 문제를 파고 들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잔인성을 정당화하는 사상(국가권력의 명령에 대한 복종, 종교적 신념에 대한 악의 토벌이라는 맹신 등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의 문제이다.
인간을 평화적이라고, 선하다고, 믿는다해서 인간이 평화적이고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잔인한 자일수록 자신의 잔인성을 직시하기 두려워하여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 인간을 선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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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의 정신분석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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