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인간의 모호한 특성

20세기 중엽, 인간이 동물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모든 이야기는 이단시 되었고 반대로 동물의 마음을 거론하는 것 또한 금기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1960년 한 젊은 여성에 의해 완전히 변했다. 그녀는 탕가니카 호수 근처에서 침팬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나는 대학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동물은 성격을 가져서도 안되고, 생각해서도 안되며 감정이나 고통을 느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 걸 몰랐기 때문에 나는 내가 본 것을 기록할 때 금지된 모든 용어와 개념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내가 곰비에서 관찰했던 그 놀라운 일들을 마음껏 묘사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곰비의 침팬지들과 함께 했던 제인 구달의 삶은 갈등과 개성으로 가득찬 멜로 드라마처럼 읽혀진다. 그녀의 글에서는 야망과 질투와 사기와 애정이 느껴진다. 또 개성이 구별되고 동기가 감지되고 공감이 솟구친다.

"에버레드는 점차 자신감을 되찾았다. 분명 어느정도는 피간이 항상 자기 형제와 같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파벤은 여전히 험프리와 친했고, 피간은 영리하게도 그 강력한 수컷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두 형제가 함께 있을 때에도 파벤은 매번 피간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한참 후에나 깨달았지만 구달의 의인화는 인간이라는 특별한 존재의 가슴에 대못을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인원이 원시적인 자동기계가 아니라 인간만큼이나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지능적인 존재임이 밝혀졌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물러가고 유사성이 관심의 초점으로 부상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만이 생식보다는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는 동물이라고 했지만 침팬지의 사촌인 보노보는 인간이 가능한 모든 섹스를 즐거움을 위해서 행한다.

`호모 하빌리스`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임을 말한다. 그러나 제인 구달의 스승인 리키는 제인의 관찰결과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도구를 재정의하거나, 인간을 재정의하거나,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거 같다."

또한 우리는 인간만이 문화(경험을 통해 학습한 습관을 모방으로 세대간 전달하는 능력)를 가졌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에 사는 침팬지는 여러세대에 걸처 어린 침팬지에게 돌에 견과류를 놓고 돌로 쳐서 깨뜨리는 법을 가르치고 전수한다. 또한 사냥 전통, 부르는 신호방법, 사회 체계가 집단마다 완전히 다른 범고래는 어떠한가?

우리는 인간만이 집단전쟁을 하고 동료를 죽이는 동물이라 추정했다. 그러나 곰비의 침팬지들은 1974년 그 추정을 말끔히 정리했다.
우리는 인간이 유일하게 언어를 지녔다고 믿었다. 그러나 원숭이에게는 다양한 포식자와 새의 종류를 가리키는 어휘가 있다. 아직 동물이 문법과 구문론을 습득할 수 있다는 증거는 없지만 돌고래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이 유보된 상태다.
몇몇 과학자들은 침팬지에겐 `마음의 이론` 즉 , 다른 침팬지의 생각에 근거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침팬지는 자주 속임수를 쓴다.

- 본성과 양육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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