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혁신에는 혁신이 없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혁신의 순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1916년 8월, 솜므 평원, 지난 2년간, 양군은 머리를 쥐어짜 가면서 상대방 참호 진지를 뚫는 방법을 고민했다. 영국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무기를 투입했다. 신무기의 아이디어는 당시로는 제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생각이었다. ‘커다란 군용 트랙터에 강철 장갑을 씌워서 만든 이동식 기관총 진지로 독일군 진지를 공격하자.’ 영국군은 독일 스파이가 이 신무기를 알아챌까 봐,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신무기에 포장을 두르고, 가짜 물품표를 붙여 놓기까지 했던 것이다: 물품표 ‘물탱크(tank)’. 이후 근 100년 간 지상전의 왕자로 자리잡은 전차(tank)의 탄생이다.

언젠가부터 ‘혁신(innovation)’이라는 말은 우리 삶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혁신이란 ‘기존의 방식이나 상태를 확연히 다른 것으로 바꾸어 새로이 한 것’으로 정의된다. 우리는 활판 인쇄술부터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을 바꿔 놓은 수많은 혁신들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혁신이라는 이름의 성배를 찾아 헤매인다.

‘혁신’이 태어난 순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지식의 값싼 보급을 가능케 한 명실공히 인류 최고의 발명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아래에서 보다시피 이 책은 별로 혁신적이지가 않다. 오늘날의 책보다는 필경사가 일일이 베껴 화려한 장식을 입힌 중세의 수서본을 더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양피지 대신 종이를 썼다는 것 그리고 직접 베끼지만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중세의 흔한 수서본과 동일하다. 가격 역시 수서본 만큼이나 비쌌다.

구텐베르크 성서.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성서는 현재 모두 48권이 남아 있으며, 사진의 것은 복제품이다. 비록 양피지 대신 종이를 쓰긴 했지만, 채색사가 장식을 할 수 있도록 여백이 많았으며 문단 첫 글자 역시 매우 화려하게 디자인됐다.

세계최초의 철제 다리를 보자. 철은 나무나 돌보다 더 먼거리를 연결하고 무게도 가벼워 교통에 혁신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혁신적 철체 다리의 시조는 1781년, 영국 슈롭셔에 세워진 아이언 브리지다. 그런데, 이 아이언 브리지는 그리 혁신적이지가 못하다. 크지도 않은데 380톤이나 나가고, 기존의 목조 다리와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만든 탓에 재료 빼면 다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무거운데다 철의 품질이 조악해 끊임없이 구조안전 논란에 시달렸다.

최초의 철제 다리. 영국 슈롭셔

이런 사례들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안 그런 케이스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러니까, 혁신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정작 혁신의 순간에 ‘혁신’은 없는 셈이다. 뭔가 이상하다.

흔히 ‘혁신’은 ‘개선’ 혹은 ‘개량’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한다. 전자는 기존의 것에서 완전히 단절된 급격한 변화로 생각되는 반면 후자는 기존의 연장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작은 변화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우선 ‘혁신’이 종래에 없던 뛰어난 생각의 산물이라는 생각 자체가 미신이다. 흔히 혁신은 이미 있던 아이디어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다. 구텐베르크 시대에 이미 ‘유성 잉크로 글자를 찍어낸다.’는 아이디어는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필경 작업을 할 때 문단 첫 글자를 일일이 그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유리로 만든 스탬프를 사용해서 찍어 냈다.

압착기 또한 아주 흔한 물건이었다 – 와인을 만들 때 사용되는 도구였으니까. 인쇄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활자일 텐데 구텐베르크의 가업은 화폐 주조였음을 감안하면 역시 흔한 물건이다. 철제 다리 같은 경우는 훨씬 더 명확하다 – 천 년 전부터 존재한 목조 다리 건축물에 사용되는 부품들만 철로 만드는 것이다.
혁신은 문제투성이다. 하지만 혁신의 순간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 또한 바로 이 문제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개선 방향과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초의 철제 다리는 실패작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의 물건이었다. 무게가 엄청나다 보니 얼마 안 돼 다리에 금이 가는 등 문제가 속출했다. 하지만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철이라는 재료 특성에 주목했고, 이를 활용하는 전혀 다른 방식의 건축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지금 보는 수십km짜리 현수교는 이러한 개선의 결과물이다.

인쇄술도 마찬가지였다. 구텐베르크 이전 시대에 책이란 필경사가 양피지 위에 하나 하나 베껴서 만든 귀중품이었다. 구텐베르크 역시 인쇄술을 필경 작업의 연장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이 비싼 물건을 한꺼번에 만들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쇄 작업이 반복되면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가 제기되었다. 인쇄된 책은 베낀 책과는 달리  ‘제품’이었던 것이다. 조판을 보존하면 얼마든지 새로 책을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활자는 점점 더 많이 제작되었다. 활자의 가격은 계속해서 내려간 반면 품질은 향상되었으니, 더 많은 책들이 인쇄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더 많은 책이 인쇄되어 나오고 경쟁이 계속되면서 책값이 저렴해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책이 사치품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작품에서 보이는 화려한 장식을 위한 여백과 가죽 장정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제 책은 종이로 표지를 만들었고 여백도 줄어들었다. 이전보다 글자가 더 작고 빽빽해지면서 출판사들은 가독성이 좋은 서체를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개선의 과정에서 인쇄술은 ‘필경 작업의 연장’을 넘어서서 인류사를 바꿔놓은 진정한 ‘혁신’이 됐다.

이렇게 놓고 보면, ‘혁신’이라 불리는 사건들과 ‘개선’이라 불리는 사건들의 관계가 보인다. 혁신의 순간에는 정작 혁신적인 무언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사건은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점과 가능성을 드러냄으로써 개선 작업의 방향을 제시하며 우리의 삶에 혁신을 가져온다. 뒤집어 생각하면, 개선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문제 많던 초기버전을 혁신적인 사건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둘은 서로 완전히 모순되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관계다.

다시 전차 이야기로 돌아가자. 앞서 이야기했듯이, 독일은 전차의 탄생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고 그냥 영국의 발명품을 지켜만 봤다. 오히려 적국의 쓸데없는 발명품을 못쓸 물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독일 축구 대표팀을 왜 ‘전차군단’ 이라고 부르는가? 전차를 진정한 혁신으로 만든 것이 바로 독일이었으며 히틀러였기 때문이다.

처음 전장에 데뷔한 전차는 우스꽝스러운 물건이었다. 뒤뚱뒤뚱 느리게 움직이는 주제에 툭하면 고장이 나서 퍼졌다. 참호에라도 빠지면 정말 처치곤란이었다. 독일군도 곧 연합군의 전차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전차는 전쟁 승리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전차를 제작한 독일 육군 역시 이 ‘철갑 입힌 트랙터’가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알았다.

초기의 전차는 차량을 움직이는 운전수와 기관총을 사격하는 전차장 두 사람이 조종했는데, 전차장이 전장 상황도 살피고 이동 지휘도 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할 일이 많았다. 강철 상자 안에 들어앉은 전차장의 시야가 심각하게 제한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독일 육군은 쇳덩어리를 잘 개량한다면 전쟁의 기존 컨셉을 바꿀 수 있는 물건으로 봤다. 독일 국방군이 전차를 가지고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전하게 되자 문제점이 보고되었고 개선되었다. 얇은 장갑을 두껍게 만들고 기동력 향상, 현가장치 부착, 회전식 포탑, 해치, 시야확보를 위한 전차장 잠망경 등등의 개량이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전차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꾼 것이었다: ‘전차는 기관총이나 박격포 같은 물건과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보병 부대와 함께 운용해서는 안 된다.’ ‘전차만으로 이루어진 기갑부대를 편성하여 적 방어선을 돌파해야 한다.’ ‘기갑부대의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모든 전차에 무전기를 달고, 조작을 전담하는 무전수를 배치한다.’ 끊임없는 개선과 발전 사이에서 전쟁기술의 혁신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전차가 등장했을 때, 독일 고위 장성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재미있는 장난감이지만, 군사적 가치는 별로 없다.” “이런 물건으로는 전쟁에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독일군이 기갑부대를 앞세워 마지노선을 돌파하여 프랑스를 점령하자 (1940), 이런 소리는 쑥 들어갔다. 전차가 ‘혁신’이 된 과정은, 이렇게 기나긴 개선과 문제 해결의 과정이었다.

내 지인들 중에는 초기벤처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고, 그만큼 ‘혁신’에도 관심이 많다. 대학원에 있는 내게도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 아이디어가 있다며 이런저런 제안을 보내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어느 천재의 기발한 창의력으로 혁신이 일어난다는 걸 믿지 않는다. 다만 ‘문제점을 발견하고 명확한 형태로 정의하는 일’ 그리고 ‘반복적인 시도와 시행착오를 통한 개선’ 의 중요성을 믿을 뿐이다. 나는 내 주위의 창업자들과 개발자들 또한 이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 ㅍㅍ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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