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은 인류의 일부이며, 한 인간은 각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고 각 기관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위계조직은 국가사회와 비슷하다. 모든 복합적인 조직들(인류, 국가, 세계기구)는 모든 각 부분들이 공동의 이념에 순응하고 도움이 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직체는 몇몇 소수의 구성원이 탈퇴하거나 반역한다해도 잘 극복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지면 전체의 생존기반이 위험해진다.
오로지 국가적 입장에서 볼 때는 이들 반락세력들은 악하다. 그러나 기존질서에 항거하는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또한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가는 복종을 원하고, 집단들은 자신의 견해를 실현할 자유를 원한다. 양측의 희생없이 동시에 목적을 실현시키기는 쉽지않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암이라는 사안을 다른 영역을 통해 설병하려는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잘 이해해야 암을 고찰하는 지금까지의 편협한 시각을 넓혀줄 수 있다. 암은 다른 병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독극물과 같이 외부에서 들어온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난다. 점점 더 많은 기존의 세포들이 태도를 바꾸고 꾸준히 확대작업을 일으킨다.
왜 기존의 세포는 몸전체에 헌신했던 기존의 태도를 바꾸는 것일까? 그 동기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다세포 동물인 인간의 충직한 일원이었던 암세포는 단지 이 다세포 동물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해진 활동만 수행하면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세포 자신의 독자적인 발전을 위한 토대를 잃었다. 세포는 단세포 시절 만끽하던 자유를 잃었으며 언젠가는 사멸할 운명이되었다. 그가 독자적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단세포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이해못할 일이 아니다. 순간 이 세포는 지금까지 공동으로 지내던 집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가차없이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 계획은 일단은 성공적이나 그 폐혜는 아주 오랜 기간이 지난후에 나타난다. 암세포의 행동은 인간이 숙주로서 살아있어야만 성공적이다. 죽음은 암의 발전에 있어서도 종말이다. 이 둘은 모두 생존하고 싶어하고 그를 위해서 둘중의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울 각오가 되어있다.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한 계속 반복해서 암세포를 수술로 제거하고 방사선을 쪼이고 항암제를 복용한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내가 국가에 반역할 수도 혹은 반역자를 처단하는 일을 하고는 있지 않은가?
여기에 암에 걸리는 데 대한 해답이 들어있다. 오늘날 그토록 열심히 암을 퇴치하려고 함에도 별 성과가 없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지어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의 수명이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보다 더 짧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암은 이시대와 우리의 집단적인 세계상의 표현이다. 즉 우리는 스스로 내면에서 암이라고 인식하는 것만 암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자기자신의 이해관계를 무자비하게 확장하고 실현하고자하는 욕망을 경계해야한다. 바로 그것이 암이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그리고 개인의 활동에서 인간은 자신의 목표와 이익을 확장하려고 노력하며(암발생) 도처에 이해관계의 거점을 확보하고(암전이), 오직 자기자신의 생각과 목표만 관철시키려고 노력한다.(암성장) 이때 우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자기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이용한다.(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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