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0일 목요일

음양(陰陽)적 세계관

중국 성리학의 세계관은 기장 기본적으로 이원론적인 음양사상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대응된다.

양(陽)=천(天)=무형(無形)=희박한 기(氣)=건(乾)=혼(魂)=정신=도(道)
음(陰)=땅(地)=유형(有形)=조밀한 기(氣)=곤(坤)=백(帛)=육체=기(器)

죽음에 대한 기독교나 불교의 생각과 다르게 성리학은 이또한 음양사상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에서 언급된 혼(魂)과 백(帛)이다. 쉽게 말해 혼은 몸속에 든 기(氣), 혹은 정(精)에 비유될 수 있는 반면 백(帛)은 육체에 비유된다. 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음양이 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듯 다른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하나도 자연 스러지게 된다. 서양사상의 도래로 혼을 영(靈,ghost)과 같이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전혀 다른 것으로 육신이 사라지면 정신도 사라지게 된다.(단 조상들은 `혼`이 사라지는데 120년(4대)이 소요되어 그동안 신주를 모셨다.)

죽음이 찾아오면 `혼`은 陽의 속성을 지닌 하늘(天)으로 `백`은 陰의 속성을 지닌 땅(地)으로 돌아간다. 특히, 불의의 사로로 `혼`은 말짱한데 `백`이 사라지게 되면 혼이 거할 백을 잃고서는 액귀가 된다고 한다.

정도전은 `불씨잡변(佛氏雜辨)`에서 불교를 비판하며 윤회가 있다면, 우리의 기(氣)가 담긴 내쉰 숨이 다시 그대로 들어오는가? 죽은망자로 하늘이 가득할 것인가? 나뭇잎이 스러지면 다시 새싹으로 나는가?라며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그는 불교의 윤회사상이 `生`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사회 통제의 수단(현실의 고통은 전생의 업에 대한 죄값)으로 쓰인것에 불과하다며, 칸트와 비슷하게 종교에 대한 냉철한 이성의 범위에서의 비판이 항상 필요함을 역설했다.


현재 우리 과학의 시대,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만물이치를 연구하던 성리학이 그 힘을 잃고 삶과 죽음의 세계관에 있어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득세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우리가 삶에 미련을 가지고 무비판적으로 의지하고자하는 종교적 대상이 그만큼 필요했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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