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요즘 재미 있어요?", 대답은 심드렁하다. 지금 뭐 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럼 대답이 이렇다 "영화?", "여행?" 이런 대답은 우연이 아니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을까? 관점 즉, perspective이다.
"그럼 어디로 여행가고 싶으세요?"라고 묻는다. 대부분 유럽을 가고 싶다고 한다. "유럽 어디로요?" 그럼 대답이 없다. 내가 독일에 있을 때 한국서 온 친지들은 렌터카를 빌려 2주정도 여행을 하고 반납하곤 했다. 반납할 때마다 렌터카 직원은 한국사람임을 금새알아본다. 어떻게 알았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2주동안 5천km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밖에 없다. 하루에 300km이상 달렸다는 건데 그게 자동차 경주지 어떻게 여행인가?"
한국인은 죽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즉 관점에 굶주렸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원없이 보고싶은 것이다.
미국식 처세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관점이다. 인생을 바꾸려면 관점을 바꾸라고 하는데 대체 관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설명도 없이 무조건 바꾸란다. 그래서 인문학적 사회학적 통찰이 필요한 것이다.
관점은 원근법에서 나온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은 내가볼 때 원근법의 발견이다. 영어로 원근법과 관점은 둘다 perspective다. 관점을 즐기는 것은 원근법으로 인해 가능해진 근대 이후의 문화현상이다. 따라서 관점을 설명하려면 원근법을 먼저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근대 서양 회화의 원근법을 보면 소실점이라는 한점에 모이는 위치가 있다. 그 점을 중심으로 선을 그으면 인물이나 사물의 비례가 잘 맞아떨어진다. 이 소실점이 인간으로 치면 `관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라는 작품을 보면 이 소실점의 위치와 인물 비례가 맞지 않아 어색해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원리 이그림은 큰 성당의 벽에 걸릴 작품으로 그림을 정면에서 볼 수 없는 교회구조를 반영한 것이다. 즉, 약간 왼쪽에서 그림을 보게되는 것을 고려하여 다빈치는 일부러 소실점과 맞지 않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것을 관점의 변화라고 한다.
그러한 면에서 여행, 사진, 영화, 정원가꾸기, 분재 등 상당수의 취미활동은 이러한 관점변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화심리학, 김정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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