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0일 목요일

연예인 괴담의 해석

한동안 나훈아 괴담이 시중의 가쉽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고령의 나훈아가 모 글래머 여배우와 염문설이 있었는데 그녀가 실은 일본 야꾸자 보스의 애첩이었고 그로인해 나훈아의 중요한 부분이 잘렸다는 괴담이다.

진실성 여부에 관계없이 나훈아 괴담은 이 땅의 중년 남녀들이 꿈꾸는 스토리 텔링의 구조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 스토리에는 김혜수, 김선아와 같은 글래머 스타들이 등장한다. 그녀들은 모든 인간소외에 힘들어하며 모성회귀를 꿈꾸는 중년 남성들이 한번 안겨보고픈 큰 가슴의 미녀들이다. 사실 큰 가슴의 미녀 탤런트라면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소통부재의 인간 내면의 불안때문에 나훈아 괴담도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의 나훈아가 이 미녀 글래머들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수컷의 향기를 상실해가는 중년들의 묘한 질투와 대리만족의 이중적 구조를 반영한다. 여기에 중년들은 자신들의 성인만화적 로망을 덧붙인다. 야쿠자의 등장과 복수다. 이는 어릴때 숨어 읽던 익숙한 성인만화적 클리셰다. 그리고 그 결말은 남성성의 절단이다. 아주 완벽한 결론이다.

사실 대중스타는 자기 스스로의 스토리 텔링에 익숙치 않은, 존재의 흔들림에 위태로운 상태의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가쉽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으로 입건된 최민수나 도박과 불륜의 피해자 황기순, 마약 등으로 입건된 탤런트 등은 아주 훌륭한 대중 스타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제공하고 철저하게 씹을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며 대중에게 즐거움을 준다. 이는 나약하고 퇴폐스러웠던 로마후기시절 콜롯세움에서 검투사의 잔인한 살육을 보면서 대중이 열광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런면에서 안성기나 최수종, 김혜자 등은 대중스타로서의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 그에 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착실하고 성실한, 연기잘하는 배우지만 그뿐이다. 그래서 나는 안성기보다 최민수가 훨씬 더 좋다.

특히 신비주의 전략의 쓸 경우에 이러한 대중의 스토리 텔링에 더욱 쉬운 먹잇감이 된다. 나훈아는 대중이 이야기거리를 찾는 와중에 그들로부터 숨었다. 스타가 스스로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으면 대중은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국 나훈아 괴담은 스토리 텔링에 굶주린 이들이 벌인 해프닝이었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 행복과 재미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혹은 만들더라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이 땅의 중년들이 어설프게 만들어낸 슬픈 이야기인 것이다.

- 김정운 문화 심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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