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1일 금요일

강운함(强運艦) 유키카제(雪風)


유기카제


"구레의 유키카제와 사세보의 시구레는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태평양 전쟁 말기 일본 해군들 사이에서 떠돌던 소문이다. 아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다. 비록 사세보를 모항으로 했던 시구레 호는 1945년 말레이 반도 근처에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격침 되었지만 유키카제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종전 후에도 오랜기간 생명력을 이어나간다. 유키카제는 어떤 존재였을까? 2,000톤급의 작은 구축함이 시대를 뛰어넘어 회자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 1940년 1월 21일 사세보(佐世保) 해군공창에서 카게로급 구축함의 제8번함으로 탄생

2. 1942년 2월 27일 수라바야 해전에서 다른 구축함들과 공동으로 미 순양함 2척, 구축함 1척 격침. 이후 자바 해협에서 연합군 잠수함 소탕작전 시 잠수함 1척 격침

3. 1942년 6월 4일 태평양 전쟁의 판세를 뒤집은 미드웨이 해전에 참전. 일본의 주력항모와 함대가 궤멸적인 타격을 입음. 유키카제는 무사 귀환

4. 1942년 8월 24일 동부솔로몬 해전에서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 호위. 이미 전세는 기울고 있었다.

5. 1942년 10월 25일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공모함 즈이카쿠 호위

6. 1942년 11월 과달카날 해전! 본격적인 함포전에서도 살아남고, 다른 함들과 공동으로 중순양함 2척 구축함 4척 격침(이때 어뢰 발사를 위해 미군 함포 사거리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살아남았음)

7. 1943년 2월 과달카날 철수작전에 참가 3번의 철수작전에 모두 투입. 생존확률이 지극히 낮았던 과달카날 철수작전에 3번 모두 투입되어 무사히 살아남음.

8. 1943년 3월 2일 비스마르크 해전, 미국, 호주 공군의 공습으로 구축함 4척, 수송선 8척이 격침되는 상황에서도 표류하던 일본군 1개 대대병력을 구출한 다음 퇴각

9. 1943년 7월 13일 콜롬방가로 해전. 기함 진쓰의 호위 임무를 맡았는데, 미군 함대의 공격으로 진쓰 격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대 지휘권을 인수 받아 반격. 미군 함대를 퇴각시킴

10. 1944년 6월 19일 필리핀(마리아나 해전)…이때는 정말 ‘운빨’의 최고봉. 필리핀 해전 때문에 추진기가 고장남. 원래 임무였던 항공모함 호위 대신 유조선단 호위로 임무가 바뀌게 됐고, 8척의 유조선을 호위해 도쿄로 돌아가게 된다(가다가 잠수함에 의해 1척이 격침됐지만, 이 정도면 선방 중에 선방). 그러나 애초에 같이 있었던 함대들은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에 의해 괴멸.

11. 1944년 10월 23일 레이테만 해전. 이때 세계 최대 전함인 야마토급의 2번함 무사시를 호위. 미 제3함대의 대규모 공습에 무사시 격침. 옆에 있던 유키카제 살아남아서 전함 나가토를 호위해 구레항으로 퇴각. 함대는 거의 전멸

12. 1944년 11월 29일 야마토 급의 3번함으로 건조된 항모 시나노 호위. 항공모함 부족으로 고민하던 일본해군이 전함을 급히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해 만들어진 항공모함으로 당시 7만 2천 톤의 배수량을 자랑했다. 그러나 미 해군의 잠수함 아처피쉬의 어뢰 6발을 맞고 격침. 유키카제는 생환

13. 1945년 4월 7일 유명한 오키나와 해전. 이미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미 해군 제58 기동부대 소속의 10척의 항공모함. 9척의 전함, 500대의 미해군 함재기와 항전. 계란으로 바위깨기. 야마토 격침, 호위 구축함 5척 모두 격침. 유키카제는 단독 생환. 당시 미해군 함재기가 발사한 로켓탄에 피격되었으나, 식량창고에 맞았고, 그나마도 불발탄. 사망자 없음(당시 유키카제는 야마토에서 1.5km 거리에 있었다고).

14. 이후 구레항 공습을 피해 동료 함정들과 함께 동해로 대피 하던 중 미군 함재기의 공습을 받음. 이상하게도 유키카제는 한발도 피격되지 않음. 돌아오는 길에 기뢰를 건드리나 기뢰가 불발. 유키카제의 뒤를 따라오던 히스카리가 그 기뢰를 건드리자 폭발.

15. 종전 후까지 유키카제는 생존, 전후에 라바울, 사이공, 방콕, 타이완을 왕복하며 귀환병 15,000명 수송

16. 1947년 7월 6일 일본을 떠나 중국 상하이로. 전쟁배상금 명목으로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로 소유권 이전됨. 함명을 단양(丹陽 : 붉은태양)으로 개명. 국민당 정부의 기함으로 사용. 대만 철수 작전에서 맹활약.

17. 오랜기간이 지난 1966년 태풍에 의해 좌초. 대파됨(함 이름에 바람이 들어갔는데, 바람 때문에 침몰하다니 아이러니). 1970년 고철로 해체. 대만은 닻과 타륜을 일본으로 보냄. 현재 일본 박물관에 전시 중.


유키카제는 태평양 전쟁 내내 12만 8천 마일을 달렸다(지구를 5.15번 돌 수 있는 거리다). 그 동안 260명의 승조원 중 단 2명의 전사자만 기록됐다. 당시 유키카제는 일본 함대 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운함이었다. 이렇게 되자 유키카제의 승조원들은 자신의 가족 이름에 유키(雪)라는 글자를 넣게 된다.

유키카제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던 걸까? 그건 아니다. 당시 유키카제의 분위기는 여타 다른 함대의 분위기와는 많이 달랐다. 훈련 하나만은 똑 부러지게 하는 건 기본이었지만, 그 나머지가 문제였다. 이들은 함 내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작을 하고, 상급자와 하급자가 아무 거리낌 없이 반말을 하고, 술판을 벌이는, 말 그대로 당나라 부대라면 바로 그곳이었다. 덕분에 해군 지휘부에 단단히 찍힌 상황이었지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는 함의 전통(?)으로 이어진다.

엄청난 전과 덕분인지 최신 장비들(레이더, 소나)을 우선적으로 장비하게 해 준다. 결정적으로 유키카제가 다른 함들과 다른 점은 '살겠다는 의지'다. 다른 전함이 옥쇄와 자살돌격을 말할 때 '꼭 살아서 귀환한다.'를 함의 구호로 외칠 정도로 생존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보여준다.

야마토 만큼은 아니지만, 유키카제는 나름 여러 매체에 그 이름을 팔며 끈끈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성이나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덮어놓고 돌격하고 싸우는 야마토 보다는 유키카제의 스토리가 훨씬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그렇기에 아직까지 회자되고, 차용되고, 활용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 ㅍㅍㅅㅅ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