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인간은 다른 종과 다른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르지 않은 것일까? 인간의 일상활동을 모두 모아 보면 인간의 특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 가운데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부분은 영장류들에게도 가능하다. 우리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어떤 행동이 있을까? 시대를 통틀어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지만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는 행동말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에픽테투스, 아우구스틴, 아퀴나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파스칼, 로크, 라이프니츠, 루소, 칸트, 그리고 헤겔은 하나같이 `인간은 본질에서 다른 (모든)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견해`의 지지자였다.
루소를 제외한 모든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은 `이성, 지성, 사고, 또는 오성`이라고 주장했다.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인간의 특징은 육체에 존재하는 물질과 에너지로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무엇`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았으며 다양한 종의 동물행태학조차도 공부하지 않은 이들이 말하는 내용의 신빙성마저도 의심스럽다.
몇몇 서양 철학자들, 에이비드 흄만이나 다윈은 인간과 다른 종 간의 차이란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수많은 현대철학자들에 따르면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1)과거와 미래에 대한 진술에 해당하는 문장을 만들 수 없으며,
(2)먼 미래에 쓸 도구를 제작할 수 없고,
(3)오랜 역사적 전통을 이루는 누적된 문화유산이 없을 뿐 아니라,
(4)지각을 통해 파악되는 현재상황에 뿌리를 두지 않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고금의 손꼽히는 숱한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동물에 대한 무지속에서 자신감과 자만감에 가득차 보급시킨 이 명백한 오류를 보면, 우리 인간에 대한 중요한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점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분명한 특징을 찾으려는 최초의 시도 가운데 하나는 플라톤의 것이다. 그는 인간을 털 없는 양족(兩足) 동물이라고 했다.
아담 스미스는 `교역한다든가 교환하는 성향은...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으로 다른 동물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 16세기의 마틴 루터와 레오 13세는 사유재산이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주요한 차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침팬지는 교환을 아주 좋아하고 대부분의 포유류는 자기소유의 암컷무리(하렘)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한 말은 때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러나 침팬지와 보노보, 사회성을 가진 곤충들은 인간보다도 훨씬 잘 조직되어 있으며 권력과 암투, 전쟁, 정치를 행한다.(이전글 호모 폴리티쿠스 참조)
`용기는 인간 특유의 자질이다.` 이 말은 타키투스가 로마 귀족 클라우디우스 시빌리스의 말을 기록해 전해 내려온다. 그러나 어미새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날개가 부러진 척 하며, 어미물소는 새끼를 보호하려 맹수에 대항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중에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정의가 있다. 그러나 침팬지도 유추와 추리를 통해 추론을 할 수 있고, 대화가 가능하다. (이전글 호모 폴리티쿠스 참조)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성이 없는 생물과도 다르다.` 이것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쓴 교의이다. 그러나 인간이 언제나 이드(id)를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인간의 동물적 본성이다.
한때 동물행동에 대한 유력한 전문가였던 야콥 폰 웩퀼조차 `특정한 목표를 가진 행동은 다른 동물에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러나 침팬지는 적에게 던지기 위해 돌을 모은다. 다람쥐는 나중에 먹기위해 도토리를 땅에 묻는다.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우리를 특징짓는 것은 기억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원생동물조차도 미로학습을 시킬 수 있으며 코끼리는 과거 경험에 따라 물을 찾고 루트를 따라 이동하며 과거 자신을 해하려했던 인간을 기억해 복수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여러가지 섹스습관을 가지고 인간을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침팬지도 입을 맞추고, 보노보 침팬지는 스왑,오럴,애널 등 인간이 상상가능한 모든 섹스를 한다. (이전글 호모 폴리티쿠스 참조)
1928년 영장류에 대해 쓴 한 과학자는 `강간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라는 것은 정말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강간은 오랑우탄과 스텀프테일 원숭이의 경우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폭력적인 성적 억압은 비비원숭이와 침팬지의 경우에는 흔한 일이다. 무엇보다 강간하지 않는 사람이나 여자는 인간이 아니란말인가?
섹스전에 전희(前戱)를 하고 그 지속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인간의 특징을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학습된 행동이다. 학습은 모든 동물종에 공통적인 특징이다.
남성은 사냥과 싸움, 여자는 채집과 양육을 담당하는 성에 따른 분업을 고유한 인간의 특성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침팬지도 그런 분업을 한다.
유년기, 태어나서 청년기에 이르는 시기가 길다고 하지만 코끼리만큼 길지 않으며, 성숙에 이르는 시기는 침팬지의 경우보다 조금 더 길 뿐이다.
인간의 놀이적 특징을 `호모 루덴스`라 한다. 그러나 놀이는 포유류 전반의 속성이다.
개인위생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로마 철학자 에픽테투스가 말했다. 그러나 고양이만 봐도 이것은 틀렸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는 어떻게 할 건가?
인간은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법률』에 등장하는 아테네의 방랑자가 인간은 어는 동물보다도 웃는 경향이 강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침팬지도 웃고 울 줄 알며, 사실 웃는다는 것은 코끼리가 코로 물건을 잡을 수 있다처럼 신체적 특정근육의 발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인간만이 죽음의 고통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잘못됐다. 감정생활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뇌 변연계는 포유류 전체에 발달되어 있어 모든 동물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살인, 식인풍습, 영아살해, 텃새, 동족상잔 그리고 전면전, 게릴라전도 인간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토시사다 니시다는 `아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벌을 주는 행위는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독특한 것을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나 영장류에게 새끼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하거나 벌을 주는 행위가 발견된다.
일부일처제도 긴팔원숭이, 늑대, 기러기, 많은 조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세기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는 스스로를 하나의 종으로 인식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라고 했다. 그러나 많은 동물들의 경우 쉽게 자신의 종과 다른 종을 구별할 줄 안다.
계급 구분에 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포유류는 계급제 무리를 만들고 있으며 오히려 인간보다 심한 경우가 많다.
문화가 인간을 정의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문화와 관련해 (1)근친상간의 범위를 정하고 그것을 금지하는 것, (2)친척들을 분류하고 각각의 부류를 구별하는 것, (3)신성하게 여기는 안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과 같은 세가지가 동물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침팬지와 고릴라 등 다른 영장류에게도 정도의 차이일뿐 이러한 특성은 있다.
앙리 베르그송은 `삶에 대한 충동`을 인간의 특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침팬지도 약초를 복용할줄 알고 마다가스카 안경원숭이가 독소치유를 위해 숯을 먹는 등 학습에 의해 건강에 신경을 쓸줄 안다.
성적 억압이 인간 문화의 최초 출발점이었다고 상상하는 일부 학자들이 있다. 특히 젊은 남녀들이 성적 욕구를 아무런 제한 없이 표현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사회의 틀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열대지방의 문화에서는 성적인 억압이 느슨하고, 빅토리아 왕조 시기의 성에 대한 태도를 보면, 분명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원숭이와 유인원 사회에는 성의 기준이 느슨하긴 해도 그들 나름의 금지사항이 있다.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영장류 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관습에 한계를 두고 있다. 성적인 억압과 그와 관련된 수치심으로 인간을 특징지을 수는 없다.
미술, 춤, 음악 등의 문화생활도 다른 영장류도 가능하다.
서양에서는 의식과 자기인식을 널리 인간의 본질로 여겨 왔다.(반면 동양에서는 자아인식이 없는 상태를 신의 은총을 받은 완전한 상태라고 생각 했다.) 의식의 기원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의라고 생각되어 왔다.
아니면 비슷한 말이지만 잉태의 순간에 다른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인간에게 비물질적인 영혼이 들어간 결과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의식이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힘을 끌어들여야 할만큼 불가사의한 현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의식의 본질이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 즉 유기체의 내부와 외부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미 살펴보았듯이 대부분의 동물이 (미생물조차도) 그런 정도의 의식과 인식은 가지고 있다.
건강한 신체의 모든 세포는 자신과 다른 것을 구별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경우 거울상이 흉내를 잘 내는 어떤 다른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대략 2년이 걸린다고 한다.
거울상이 무엇인지 깨닫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부 유인원의 경우도 어린아이와 비슷하다.
몽테뉴는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인간만큼 믿을 수 없는 동물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침팬지도 거짓말을 하며, 동물들의 사회적 관계에 있어 기만, 자기기만 등의 문제는 생물학의 새로운 주제가 되고 있다.
유명한 19세기의 언어학자인 막스 뮐러는 `언어야말로 우리에게는 루비콘 강이다. 감히 이 강을 건너려 드는 동물은 없다.`고 했다. 헉슬리도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있음을 들어 `인간이 동물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물질과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인간성의 고귀함에 대한 외경심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고 했다. 데카르트도 언어가 인간과 동물의 진정한 차이라고 했다.
그러나 침팬지와 보노보도 단어와 기호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고릴리는 훈련을 통해 수화로 200여개의 어휘를 구사하고, 특히 고래의 경우 거의 인간과 같은 수준의 대화를 한다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인간의 뇌만이 좌우기능이 분화되어 있다는 독단적인 생각이 있다. 언어를 배운 침팬지의 경우에도 뇌의 좌우기능이 분화되어 있는 게 발견됐다.
상대적인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인 차이라고 계속 고집을 부린다 해도 우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 인간에게 독특한 어떤 특징도 발견하지 못했다.
------------------------------------------------------
(잃어버린 조상의 그림자,401p-434p)
현재 인류가 이루어낸 문명은 결국 인류가 아니더라도 이루어낼 수 있었다 라는 견해이신가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