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30일 목요일

독일통일, 그리고 원칙론과 상황론

독일에 있을 때 한 젊은 아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이코노미 석에 탔다. 2세 미만 아이는 좌석 구입이 필요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이 아이가 너무나 시끄럽게 우는데다 정신이 너무 사나워서 아내는 승무원에게 아기엄마의 좌석을 비즈니스 클래스 등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독일 승무원은 원칙을 내세우며 끝까지 안된다고 했고 아내는 열이 받을대로 받아서 비생기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독일인의 꽉막힌 원칙주의를 비판했다. 원칙은 어떠한 상황이든 지켜져야한다는 독일식 원칙론과 상황에 따라 원칙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는 한국식 상황론의 대결이다.

사실 독일의 저력은 바로 이 원칙론에 있다. 독일 자동차가 그렇게 튼튼한 이유는 이 원칙 때문이다. 모든 자동차 부품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 집집마다 유리창 크기도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커튼을 따로 맞출 필요조차 없다.

독일인들에게 원칙을 어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원칙이 없는 미래의 낯선 상황을 독일인들은 매우 불안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예상되는 미래의 낯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원칙을 세운다. 그리고 그 원칙은 꼭 지켜져야한다.

독일의 IT관련 산업의 발전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비해 상당히 느린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발전이 너무 빨라서 예측이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대신에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자동차나 기계산업에 집중 투자한다. 반면 한국이 IT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유연한 사고와 무모할 정도의 과감함 때문이다. 그 과감함이 한편으로는 고속성장의 원인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온갖 사고와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독일에서 나는 그들의 원칙론과 치밀함이 너무나 부러웠고 우리가 꼭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독일식 원칙론과 치밀함이 한순간 무너지는 것을 나는 독일 역사에서 경험했다. 독일 통일이다.


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뤄졌다. 1989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개혁개방 원칙이 동구워 사회주의 국가들에게도 적용됨을 역설했다. 그해 여름 헝가리와 체코가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을 개방했다. 그해 여름 휴가철 동독 사람들이 이 국경을 통과해 오스트리아로 탈출했다. 동독 정부가 이를 저지하자 동독 주민들은 여행자유화, 언론 자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외치며 연일 시위했다. 절대로 동독의 사회주의 체제까지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같은해 11월 9일 저녁, 동독 정부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여행자유화에 대한 정책을 수정발표한다. 그러나 내용 자체는 여권 발급기간을 단축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그날 저녁 7시 동독 공산당 대변인 권터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을 열어 내용을 발표한다. 그러나 정작 그는 여행자유화 정책회의에 참여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발표하는 내용의 자세한 내용을 전혀 몰랐다.

새로운 여행자유화 정책을 읽어가던 그에게 이탈리아 기자가 그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지 물었다. 샤보브스키는 멀뚱한 표정으로 아무 생각없이 답했다. "지금부터! 바로!"

대부분의 독일 기자들은 별 내용없는 여행자유화 정책에 시큰둥했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오버하며 본국으로 급전을 쳤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미국기자들도 덩달아 "내일부터 당장 동베를린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밤 서독 TV는 외신을 짜집기하여 "동독이 드디어 국경을 개방했다"는 애매한 보도를 내보냈다.

뉴스를 본 동독 주민들은 대책없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다. 정말 당장 서독 여행이 가능한지 한번 알아보려는 호기심에 나가본 것이다. 국경수비대가 저지했지만 동독 주문들은 "뉴스를 못봤냐?"고 오히려 따졌다. 국경수비대는 황당했지만 결국 길을 터줬고 일부 동독 주문은 장벽을 올라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흥분한 일부 주민들이 도끼, 망치를 들고나와 아예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반대편 서베를린의 젊은이들도 망치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우연성을 아무도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마치 독일의 통일이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부터 헬무트 콜의 실용적 정치노선 등 치밀한 외교력과 수십년에 걸친 집요한 노력의 결과인 것처럼 둘러댔지만 이건 나중에 일어난 사건을 꿰 맞추는 '구라'에 불과하다.

독일 정부가 독일 통일을 예측하고 대비하기 위해 세워놓은 원칙과 치밀함은 이 황당한 사건앞에 지극히 무기력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해가 진 이후에나 비로소 난다"고 한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이러한 원칙주의자와 상황론자가 있다. 원칙론자를 심리학에서는 maximizer(철저한 계산으로 무언가를 극대화)라고 부른다. 반대로 상황론자들은 satisfiser(웬만하면 만족하는 쪽을 선택)라고 부른다. 심리학 연구에서 둘을 비교했을 때 satisfiser쪽이 주관적 행복을 더 느끼며 편안한 삶을 산다고 한다. 반대로 maximizer는 편집증과 자책감에 빠져 삶의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현실 사회에서는 주로 상황론자가 일을 저지르면 원칙론자가 이를 수습하면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간다.

참고로 좀전의 승무원과 아내의 싸움에서 타협은 이렇게 이뤄졌다. 아기와 아기엄마가 승무원을 위한 특별 좌석에 앉기로 했다. 그러면 승무원의 원칙을 훼손하지도 않고 아내의 상황론도 만족시키는 훌륭한 합의였다.

- 김정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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