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정자의 모양은 매끈하고 날렵한 훌륭한 세포로서 머리와 몸체, 그리고 늘씬한 꼬리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긴 정자는 정상적인 사정액 전체에서 절반을 약간 웃돌 뿐이다. 정자 부대는 상식과는 달리 혼성체에 가깝다. 어떤 정자는 머리가 크고 어떤 것은 작다. 핀처럼 뾰족한 머리를 가진 녀석도 있고 머리가 시가, 배, 아령 모양인 것, 불규칙적인 것도 있으며 진짜 괴물처럼 머리가 둘, 혹은 셋이 달린 녀석도 많다.
머리뿐이 아니다. 꼬리가 짧고 용수철처럼 비비 꼬인 정자를 비롯해 꼬리가 두세개, 네개가 달린 녀석도 있다. 몸뚱이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꼽추같은 녀석이 있는가 하면 베낭을 멘 것처럼 세포 물질 포대를 짊어진 녀석도 있다. 평균적으로 부대원의 60%만이 우리가 익히 아는 날쌘돌이들이다. 나머지는 앞서말한 돌연변이들이다.
돌연변이는 당연히 수정능력이 없거나 문제가 있어서 도태된다. 하지만 정자전쟁에서 이들 모두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성의 자궁경부 점액에 기거하는 정자는 돌연변이 정자로서 `방패막이`다. 이들은 다른 남자의 정자가 자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 이상하고 기괴하게 생길수록 자궁경부를 막는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다가 아니다.
날씬하고 정성적으로 생긴 녀석중에 `정자잡이`들이 있다. 이녀석들은 다른 남자의 정자를 찾아 파괴하려고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들은 다른 정자와 마주칠때마다 상대의 머리 표면에 성분을 시험한다. 만약 그 물질이 자신의 머리와 같은 것이면 자기편임을 인지하고 다른 녀석을 찾기위한 추적을 계속한다. 나팔관에도 이러한 녀석은 있다. 이들을 `난자잡이`라고 한다. 이들도 정자잡이와 비슷하게 매끈한 모양새인데 다만 머리가 조금 더 크다.
정자전쟁의 진행양상은 이렇다. 양측정자중의 한마리가 상대의 정자와 처음 맞닥뜨리는 순간 전쟁경보가 내려진다. 모든 정자의 움직임이 일순간 빠르게 변하며 정자들은 서로서로 박치기를 통해 전쟁을 수행한다. 머리에 끝부분에는 치명적인 세포분해물질이 있다. 원래는 난자의 벽을 뚫기 위해 있는 이 물질이 상대방 남자의 정자를 죽이는데도 쓰인다. 정자잡이 한마리의 모자 속에는 적진의 정자 다수를 죽일 만한 독이 들어있어 필사적으로 적군에게 독침을 놓는다.
그렇다면 왜 실제 수정능력을 가진 녀석들은 적으면서 이토록 많은 수의 불필요한(?) 정자들이 바글바글하단 말인가?
- 정자전쟁 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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