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문명인들은 가족계획과 피임을 현대의 발명품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보다 확률을 높이고 정교하게 발달되었기는 했지만 계획적인 피임조차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양한 문화권의 여성들은 수세기에 걸쳐서 특정한 식물의 잎이나 과일, 혹은 악어의 대변 등을 이용해서 피임을 해왔다. 이러한 피임법은 동물도 사용한다. 침팬지는 적절한 시기에 피임 물질이 들어있는 식물의 잎을 씹는다. 여성 및 암컷은 수백만년전부터 가족계획과 피임을 해왔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포유류에게 열악한 환경과 번식 기피 사이에 자연스런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적대적으로 느끼지만 다른 해석도 있다. 즉, 이 스트레스 반응이 적절치 못한 시기에 무엇인가 불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친구라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피임에 특히 효과적인 도구다. 여성의 고귀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이 역설의 핵심은 여성이 종족보존 전략에 성공하기 위해서 굳이 가능한 한 많은 자녀를, 가능한한 짧은 시기에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장류가 한번에 하나만의 자식을 낳는 것은 여러자식을 부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려준다.
여성과 아버지가 건강한 상태라는 가정하에 수정된 난자의 40%는 착상에 실패해서 죽어버리고 40%는 착상후 12일 이전에 죽는다. 5%정도는 임신 3개월 전에 유산된다. 즉, 완벽한 타이밍으로 수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수정해서 아기로 태어날 확률은 15%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 스트레스가 가미되면 그 확률은 훨씬 줄어들게 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도 일종의 사후 피임, 즉, 영아살해 본능이 어머니에게는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임신되었을 때의 적절하다고 판단되었던 환경이 출산의 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급격히 변할 수 있다. 이미 출산이 가까워진 아이를 유산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산모에게 큰 피해가 간다.
여성의 임신 마지막 3개월기간은 이러한 환경 - 즉, 양육에 적합한 환경인지 - 을 테스트하는 단계다. 이를 소위 nest-building이라고 부른다. 환경의 주된 고려대상은 남편, 가정, 주위환경 등이다. 당신이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경험했겠지만 임신 7~10개월사이에 산모는 각종 걱정, 우울, 짜증을 많이 내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어느 한가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여성은 병적 우울증에 빠지게 되며 이후에 아기를 거부하거나 학대, 심지어 죽이는 사태도 종종 벌어진다.
산후 우울증 증상으로 인한 신생아의 유기, 학대, 살해 충동은 매우 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있다. 출산 직후의 이러한 여성의 행동에 정상참작을 해주는 조항을 법문에 명시한 국가도 많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토끼, 게르빌루스 쥐, 햄스터, 생쥐 등을 애완용으로 키워봤다면 어미들이 새끼를 낳은 직후 매우 예민해져서 새끼의 일부를 죽이거나 잡아먹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영아살해는 병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정신병이 아니다. 이는 당시 상황에서 새끼를 기를 수 없다는 어미의 잠재의식적 판단을 반영한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도 임신에 적절치 않은 환경으로 인한 스트레스 기간에 임신 확률을 대거 감소시키는 정자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 정자전쟁 3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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