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경우 페니스는 나르시시즘(환상아)의 중요한 거점이다. 여차하면 죽죽 커져서 적을 쓰러트리는 손오공의 여의봉이나, 비벼대
면 온갖 소원이 이루어지는 알라딘의 램프는 분명한 페니스 심벌인데, 이는 성기와 나르시시즘적 전능감의 관련성을 나타낸다.
성불능자의 괴로움이란, 성적 쾌감을 얻지 못하는 불만에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이 상처를 이은 굴욕의 괴로움이다. 또 어떤 난봉꾼이 여색 사냥을 위해 설레발치며 돌아다니는 현상은, 그의 성욕이 남달리 세서가 아니요, 상처입은 나르시즘을 회복하려는 발버둥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페니스를 한번 멋지게 휘둘러대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사내녀석들의 미진한 꿈이요. 그래서인지 모든 무기는 페니스를 닮아있다.
예술은 순수한 나르시즘의 세계다. 그 영역에서 나르시즘은 공공연히 표현을 허락받고 심지어 고상하게 보이기조차 한다. 반대로 연애나 이데올로기의 경우 나르시즘의 투영을 애써 숨겨야한다. "난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투영된 저의 환상아를 사랑하고 있어요"라고 얘기하는 바보는 없다. 이데올로기도 어디까지나 현실을 해석하고 변혁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으로 나르시즘이 포장되어있다.
예술이라는 어른의 유원지는 표현의 도피처이자 국립공원 내의 사냥 허용구역이다. 인간만이 예술이 가능한 것도 환상아와 현실아의
분열이 있기 때문이며 정신분열의 고통속에 살았던 예술가들이 작품이 추앙받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정신병자란 두말할 필요없이 현실의 세계에 끼어들어온 개인적 환상아의 희생양이다. 그들의 과대망상이야말로 우리 속에 잠재되어
있는 환상아의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이다. 우리가 그것을 조소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우리는 불가능한 환상아의 현실로의 발현을 그는 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포감과 부러움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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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뱅이의 정신분석1..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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