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세포 내 활동 중에서 그 기전이 비교적 자세히 알려진 RNA에 의한 단백질 합성과정 하나하나를 알아보기로 하자. 결론적으로 여기서는 마치 시계톱니바퀴가 한 단계씩 움직이면서 작동하는 것처럼 세포 내 대사 활동역시 기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RNA에 의한 단백질 합성 과정은 계산이론 분야의 튜링머신(Turing machine)과 깜짝 놀랄 만큼 유사하다. 이 튜링머신이라는 이론적인 계산기계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알아보자.
튜링머신은 단순한 기계장치가 어떤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수학자 앨런 튜링(Turing)이라는 사람이 고안해낸 가상적인 기계이다.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녹음 테이프 장치와 유사하다. 길이가 무한대인 읽고 쓸 수 있는 테이프가 있고 헤더가 현재의 위치를 가리키고 있다. 이 기계장치를 움직이기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주어진 상태에서 테이프에 a라는 값이 쓰여져 있으면 b로 덮어 쓴 후 오른쪽으로 헤더를 한 칸 움직여라”
쉽게 말하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한 칸씩 움직이며 테이프에 읽고 쓰기를 하는 아주 간단한 기계이다.
이 튜링머신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하여 아주 단순한 일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일반적인 계산 모델로서 고안된 것이다. 이론적으로 이 튜링머신을 가지고 모든 수치적인 알고리즘을 코딩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또한 이 튜링머신은 현대의 컴퓨터와 동일한 계산능력을 갖는 기계이다. 다시 말하면 이 단순한 기계는 모든 가능한 계산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계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다른 것뿐이다. 튜링머신은 일반적인 모든 계산을 가능케 하는 최소화된 형태로 고안된 기계장치임을 염두해 두면서 살아있는 세포의 RNA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비교해 보자.
먼저 DNA에 의해 코딩된 유전정보는 세포가 어떻게 성장하고 활동하며 어떻게 세포분열에까지 이르게 되는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적혀져 있다. 이 정보가 실제 세포활동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DNA에서 부분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그때 그때 RNA에 복사하고, 이렇게 복사되어 나온 RNA에 의해 구체적인 발현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mRNA는 이렇게 구체적인 발현을 위하여 DNA의 이중나선의 한 가닥에서 복사되어서 나온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은 길다란 한가닥의 실 모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A, U, C, G 부품들이 일렬로 붙어있다. 이 모습은 튜링머신의 테이프장치와 거의 유사하다. mRNA에 나열된 정보들은 세 개를 하나의 의미를 갖는 덩어리로 해석되며 이를 코돈(codon)이라 부른다. 이 세 배열에 정확히 결합되는 tRNA가 해당 아미노산을 꼬리에 달고 와서 결합하게 된다. tRNA는 튜링머신 입장에서 보면 어떤 위치에 어떤 아미노산이 결합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종의 적용규칙에 해당하는 셈이다. 리보솜은 단백질을 생성할 때 mRNA에 붙어서 해당 tRNA를 차례대로 결합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이는 튜링머신의 헤더에 해당한다.
각 코돈(세 염기쌍)에 어떤 아미노산이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일종의 규칙으로 작용한다. 이는 튜링머신에서의 적용규칙에 해당한다.
위 그림들은 각각 리보솜에의한 튜링머신 메커니즘으로 기록이 시작되고 펩티드 결합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이는 mRNA로부터 단백질 생성과정으로서 mRNA는 튜링머신의 테이프에, 리보솜은 헤더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 반복되면서 단백질이 생성된다.
이제 RNA로부터 단백질을 생성시키는 단계를 알아보자. 위 그림은 단계별로 아미노산을 달고 있는 tRNA가 차례대로 리보솜에 의해서 결합된 후 꼬리의 아미노산이 연속적으로 결합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아미노산이 연속적으로 결합된 것이 단백질이다. 단백질 생성의 첫 단계로 리보솜이 시작신호에 대항하는 코돈이 있는 위치에서부터 작동된다. 리보솜은 현위치의 mRNA의 3개 염기쌍(코돈)에 정확히 결합하는 tRNA을 잡아다 결합시킨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두 개의 tRNA가 나란히 리보솜에 의해서 mRNA와 결합하게 되고 tRNA 꼬리에 달린 아미노산을 펩티드 결합에 의해 연결한다. 세 번째 단계에서 뒤쪽의 tRNA를 분리시키며 리보솜이 한 칸 옆으로 이동한다. 새로 이동된 위치의 mRNA 3개의 염기쌍과 일치하는 새로운 tRNA가 다시 리보솜에 의해서 결합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리보솜에는 tRNA가 모아다 준 아미노산들이 길게 연결되어 단백질이 만들어지게 된다.
결국 리보솜은 mRNA의 어느 위치가 해독 중인가를 나타내는 역할을 하여 튜링머신의 해더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mRNA위에 리보솜이 가리키고 있는 위치에 코딩된 염기서열에 꼭 맞는 tRNA들이 차례로 연결되어 아미노산들이 결합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mRNA위에 코딩되어 있는 정보 그대로 단백질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 모든 단백질 생성 과정은 결정론적으로 완벽히 자동으로 작동하는 튜링머신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테이프의 한 위치에 헤더가 현재 처리중인 곳을 나타내는 것으로부터, 하나의 규칙이 적용된 이후에 헤더가 한 칸씩 옆으로 이동하는 것까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단백질 생성과정에서 세포 내에서 이렇게 완벽히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따르는 이유는, 세포가 정확한 시간에 정확히 원하는 물질을 만들고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백질 생성과정뿐 아니라 유전자 복제 과정으로부터 크게 보면 대사과정에 이르는 모든 세포 내 활동은 이렇게 결정론적 작동방식을 따르고 있는 정교한 기계임을 말한다.
보통의 경우 살아있는 세포가 기계가 아닌 어떤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세포내의 물질 순환과 대사과정이 너무나 복잡해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분자레벨에서 작동하는 내부 물질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계와 같은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뿐이다. 실제로 그 복잡해 보이는 행동들은 그 바탕에 작용하는 간단한 규칙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포자동자에서 규칙들은 완벽히 결정론적이지만 그 움직임을 크게 보면 대단히 복잡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분자들의 움직임역시 우연에 의존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도록 컴퓨터에 의해서 모의실험을 하는 경우에도 실제 분자의 움직임과 거의 똑같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대규모 컴퓨터 실험에서 이미 오래 전에 입증되었다. 원자폭탄 제조와 관련된 원자 핵반응 실험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컴퓨터 모의실험이 오래 전부터 수행되어 왔고 핵개발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이 모의실험에서는 각 소립자를 비롯한 원자와 분자 하나하나를 만들어 집어넣고 양자 법칙들에 따라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세포자동자와 기본적으로 유사한 실험이다. 출렁이는 물의 움직임과 물결치는 강물, 파도치는 바다의 움직임들은 이제 컴퓨터 그래픽에 의해서 완벽히 합성되어 영화의 장면에 사용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출렁이는 물의 움직임 역시 물분자레벨의 규칙들을 그대로 모델링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컴퓨터 그래픽에 활용되는 예는 이뿐 아니라 타오르는 화염과 불꽃, 뿜어져 나오는 연기의 모습을 실제와 구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어내어 영화의 위험한 장면에 사용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화염과 불꽃, 연기의 모습은 모두 분자레벨의 규칙들을 시뮬레이션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모든 실험결과들은 분자레벨에서의 행동들이 겉보기에는 예측불가능해 보이고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간단한 몇 가지 규칙이 적용되어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결정론적 시스템임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세포내의 분자의 움직임역시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포 전체가 주어진 규칙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는 기계장치라고 봐야 한다.
다시 자기 복제하는 시계로 돌아가서 살아 있는 세포를 바라보자. 시계의 장치들이 제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주위의 부품들을 찾고 수집하여 똑 같은 시계장치를 결합해낸다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세포들은 바로 그러한 일을 셀 수 없이 반복하고 있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계장치인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