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5일 토요일

실재(實在)-상보성의 원리

인간의 이성에는 근원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성향이 있다. 실제로 분별지에는 어떤 한계가 있다는 엄밀한 수학적 증명이 있다. 이 증명을 괴델(Kurt F. Goedel, 1906-1978)의 불완전성 정리라고 하는데 이 정리를 증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정리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인간 지성의 결정체가 수학이고 수학에는 모순이 없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오래 전부터 수학의 체계에는 모순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만 엉뚱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괴델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수학의 공리체계가 모순이 없다면, 이 공리 체계 안에는 옳고 그름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적어도 하나는 이 공리체계 안에 존재한다.

-수학의 공리체계가 완전하다면, 즉 모순이 없다면, 이 공리체계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사실을 이 공리체계만으로는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엉뚱한 결과를 불완전성 정리라고 하는데 처음의 것을 “괴델의 제 1 불완전성 정리” 두 번째 것을 “괴델의 제 2 불완전성 정리”라고 부른다. 이들을 풀이하여 설명하자면 “분별지로 시비를 가리려들면 옳은지 그른지 판별할 수 없는 경우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과 “분별지로 판단한 것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려면 더 큰 지혜가 필요하며 이 큰 지혜가 판단한 것도 또 더 큰 지혜가 있어야하고 이렇게 한없이 큰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말하는 것은 수학에 어떤 모순이 있다는 애기가 아니다. 이 불완전성정리가 말해주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는 근원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성향이 있어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수학으로 수학의 완전성을 증명하려고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이성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문제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는 사물을 기술하는 주체가 자신에 관해 기술했기 때문이다. 주체가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논리학에서는 자기언급(自己言及, Self-Reference)이라고 말하는데 이때는 주체가 객체도 되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지 않으면 주체=객체가 되어 즉 주체가 주체이기도 하고  주체 아닌 것, 즉 객체이기도 하여 모순율에 어긋나게 된다.

자기언급에 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정리가 말하는 내용을 관찰자인 사람과 관찰대상인 자연계와 관련하여 설명하겠다. 자연에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면 이 객관적인 실재를 기술하는 데에는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관찰자와 관찰대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면 관찰자가 자연을 기술하는 것은 자신에 관하여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 되므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일어나고 자연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데에  어떤 근원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대해 현대물리학은 명쾌한 답을 내린다. 현대물리학에서는 관찰자의 관찰행위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물을 두 가지의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으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다. 이 개념들 중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다루거나 언급되는 것 몇 가지만 열거해 보겠다.

      ① 입자(粒子)-파동(波動)
          • 실재(實在)-현상(現像)
          • 셀 수 있는 것(countable)-셀 수 없는 것(uncountable)
          • 똑 똑 떨어진 것(discrete)-연속적인 것(continuous)
          • 갇혀 있는 것(localized)-전파되는 것(propagating)
      ② 진실(眞實)-허위(虛僞)
      ③ 유(有)-무(無)
      ④ 주(主)-객(客) : 관찰자-관찰대상
      ⑤ 정신(精神)-물질(物質)
 
20세기 초까지 물리학자들은 자연현상에서 이중성을 발견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뜨거운 물체에서 나오는 복사열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빛이 에너지를 가진 덩어리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빛이 입자라는 뜻인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빛이 파동이라는 증거는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적인 연구 결과에 의해 빛이 입자라는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구공이 다른 당구공을 튕겨내듯이 빛이 다른 입자를 튕겨내는 것이 관찰된 후로는 물리학자들은 빛이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가진다는 것을 이의 없이 받아드렸다. 뿐만 아니라 입자라고 생각했던 전자가 파동처럼 행동하는 현상도 관찰되었다. 이제는 모든 입자들이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갖는 것이었다.

입자-파동의 이중성은 위에 열거한 몇 가지의 대립되는 성질 말고도 믿어지지 않는 성질이나 현상들을 수없이 보여준다. 입자를 관찰하면 분명히 한 개의 입자인데 관찰하지 않으면 하나의 입자가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을 소급하는 인과 현상도 보여주는 등 여러 가지 역설적인 일이 일어난다. 이중성은 결국 자연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이중성의 발견으로 인해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버그는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하게 된다. 이 원리는 보통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다”라 말한다. 이 불확정성 원리를 일반화 시킨 것을 보아(N. Bohr)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y Principle)라고 하는데 이 원리의 내용은 이렇다. “자연을 기술하는 기본적인 물리량에는 반드시 어떤 상보적인 물리량이 대응하고 기본적인 물리량과 상보적인 물리량을 동시에 정밀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두 가지 물리량이 서로 상보적이라는 말은 “두 양이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에 대응한다는 뜻이다. 상보적인 관계에 있는 개념으로서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음(陰)과 양(陽)을 들 수 있다. 실제로 보아는 “동양의 음양설(陰陽說)은 상보성 원리의 다른 표현이다.”라고 말하였다. “서로 대립되고 모순되는 개념”이라면 “상보적인”이라는 말 대신에 “양립(兩立)할 수 없는(Incompatible)”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지만 보아는 “서로 돕는다.”는 뜻을 가진 “상보적인”이라는 말을 썼다. 음과 양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우주는 음과 양의 조화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그렇게 쓴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때때로 “상보적인”이라는 말 대신에 “양립할 수 없는”이라는 말을 쓴다.

상보성원리는 단순히 불확정성원리를 수식적으로 일반화시킨 것이 아니고 불확정성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인식론적 바탕을 마련해 주고 있으며 이중성이 자연의 본질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중성이 자연의 본질이라면 궁극적인 실재도 이중성을 갖는다고  유추해볼 수도 있다. 이런 뜻에서 현대물리학은 반야심경이나 대승기신론을 분별지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나 상보성 원리는 물질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아가 인간의 분석행위(分析行爲)마저 측정결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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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과학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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