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민주주의의 본질

법을 존중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부형태이다. 그러나 법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최상의 정부형태이다.
- 플라톤 -


장 자크 루소는 사회와 사회속의 자유를 보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전체의 의지(general will)`와 모든 구성원의 이기심의 총합인 `모든 이의 의지(will of all)`을 구분한다. 정치는 이 두 의지를 화해시키고 조화를 이루게 할 임무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과제다.

민주주의적 결정 과정의 출발점은 공리주의에 입각한 다수결 원칙이다. 그러나 선거를 하는 동안 사회는 여러 개인들이 각자 자기 이익을 쫒아서 형성된 느슨한 집단들로 분열한다. 전체의 의지가 모든 이의 의지와 일치하는 경우는 우연히 일어날 뿐이다. 만장일치는 정치적으로 있을 수 없는 개념이다. 모든 투표권자가 개인의 이익이 아닌 전체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경우라야 만장일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 개인은 다른 사람이 거부하는 최선을 바라보고 공중이 원하는 선은 개인이 바라보지 않는다. 루소에 따르면 개인은 어리석지 않다. 그러나 악하다. 전체로서의 공중은 이와 반대로 악하지는 않지만 어리석다. 그래서 특수한 이익집단이 획책하는 사기행각에 쉽게 넘어간다. 그래서 루소는 특정 정치정당의 출현을 반대했다.

날뛰는 늑대(개인)를 길들이고 어리석은 양떼(공중)를 계몽하는 것은 정치가의 의무이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런데 늑대와 양이 한자리에 있다는 것은 더 재미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사이의 긴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엄밀히 말해 사회적인 계약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맺은 계약이다. 한사람의 사적인 개인이 전체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행동 역시 이기주의에 따라 촉발된 것이다. 인간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전체의 번영을 보장하는 최상의 조건은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해의 차이가 가장 클 때이다. 이 차이가 크면 클수록 투표결과 전체의 의지는 더 커진다. 사회의 통합성은 사회의 각 개인끼리 갈등의 차이가 클 때 보다 촉진되고 강화된다.

민주주의는 전체공중의 의지가 무엇이냐는 주제를 놓고 찬성과 반대의 왁자자껄한 소동 속에서 끝없는 논쟁을 벌일 때 활짝 꽂을 피운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서 갈등은 제도화된다. 갈등에 대한 모든 해결책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민주주의를 이룩하려 끊임없는 어리석은 결과물이 곧 민주주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선거의 목적인 인민의 의지를 결정하는 것인데 선거를 치르는 동안 비사회적인 바보짓들이 넘쳐나면서 사회구조는 통합성을 잃어버린다. 선거는 개별적인 투표권자의 질을 따지지 않는다. 기표의 수를 세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과정이므로 순수하게 양적이다. 시민은 철저하게 숫자의 조합으로 축소되고 대변된다. 간단히 말해 인민이 실제로 권력을 쥐는 순간, 그들은 인민이라는 단위로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선거를 치르는 동안 이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입후보자들은 이기주의에 따라 행동한다. 이들은 권력이나 돈을 쫒는다. 혹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특별한 정치적 형식에 만족하고 싶어 입후보자로 나선다. 이들은 가능한 모든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서 유권자들의 공포와 좌절과 탐욕에 호소한다. 요컨데 이성이 아닌 감성에 호소한다. 유권자의 어리석음은 더하다. 이들역시 민주주의적이기는 켜녕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무정부적인 견해에 이리저리 휘둘린다. 게다가 이들은 기꺼이 자기 감정의 희생물이 되기를 자처한다. 이들 앞에는 모든 종류의 다양한 선동과 책동이 펼쳐진다.

예상치 못했거나 사전에 잘 계획된 사건이, 예를 들면 테러나 스캔들 같은 것이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문적인 정치 쇼장 밖에서, 여전히 정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게 민주주의적인 의무감으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얼간이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도 얼간이다. 게다가 이렇게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꼬박고박다하는 부류는 심지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유권자의 이성적 자질을 테스트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지성의 독재를 추구하는, 다시말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자들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선거이전에 이미 선거를 끝내버리자는 사회주의 공화국 모델을 따르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민주주의와 합리성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대중의 어리석은 행동과 생각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원동력이다. 완전무결한 이성을 추구하는 것은 반 민주주의적인 결과를 낳는다. 민주주의는 오로지 실패속에서, 다시말해 결코 성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추구함으로써 성공한다.

민주주의는 허구다, 현실에는 비사회적인 바보들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허구가 없다면 진정한 민주주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민주주의가 존재하며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굳건히 믿을 때 어리석음이 세상을 지배하고 민주주의가 이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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