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5일 토요일

내 조국, 내 가족, 내 동포,,,

카잔차키스: "내 말은, 내 나라 내 조국을 위해 싸워 본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조르바: "다른 이야기나 합시다. 그런 시덥잖은 개수작은 이미 깨끗이 끝내고 잊은지 오래됐수다."

카잔차키스: "조르바, 개수작이라니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조국을 위해 싸운 것을 그렇게 부르다니?"

조르바: "내 그런 말은 교장선생한테서나 들을 말이겠수다. 내 이런말을 해서 안됐지만 당신에게 무슨말을 해봐야 소귀에 경읽기에요"
카잔차키스: "무슨 소리에요? 나도 알만한건 다 아는 사람인데... 그런건 좀 기억해주셨으면 하오"

조르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거요'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들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방을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그래서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떼끼! 웃기지좀 마슈!"

카잔차키스: "당신 대답이나 좀 들읍시다. 조르바. 어물쩍 내 질문 피하지 말고. 내 보기에 당신은 조국 같은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데, 어때요? 그런가요? 맞지요?"


조르바: "두목!! 당신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으로 말하자면! 한때 제 대가리 털로, 터키 놈들이 이슬람 사원으로 쓰고 있던 성 소피아 성당 장식을 엮어 목에 부적처럼 차고 다녔습니다요. 그래요, 두목,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소. 나는 그때만해도 칠흑같이 검던 내 머리카락을 뽑아 이 발가락으로 부적을 엮었소. 파블로서 멜라스(불가리아 비정규군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유명한 그리스 장교)와 함께 내 조국 그리스를 위해 마케도니아 산맥을 누빈적도 있소. 내 몸에는 그때 입은 상처들이 수도없이 나있소이다!

그리스 게릴라 전투요원이 되어 산에 들어갔소. 어느날 석양 무렵 나는 불가리아 마을로 내려와 마구간에 숨었습니다. 그게 바로 어느 신부의 집이었는데... 그 신부라는 새끼는 무자비한 불가리아 빨찌산이었단 말입니다. 밤이 되면 법복을 벗고는 양치기 복장에 총을 들고 이웃 그리스인 마을로 가는 거에요. 이놈이 새벽에 진흙과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와서는 다시 신도들을 위해 미사 준비를 한답시고 교회로 갑디다.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에 이 신부는 잠자는 그리스인 교장 선생을 살해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부의 마구간에서 기다렸던 거지요. 저녁 때가 되자 신부는 양에게 풀을 먹이려고 마구간으로 오더군요. 나는 이놈을 덮쳐 돼지 목을 따듯이 멱을 따버렸습니다. 귀도 잘라 내 주머니에 넣었지요.

며칠뒤 나는 다시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정오쯤이던가? 이번에는 행상으로 잠입했던 거지요. 총은 산에도 숨겨두고 동료들을 위해 빵, 소금, 장화를 사러 갔던 겁니다. 거기서 나는 집 앞에서 노는 애들 다섯을 만났습니다. 이 애들은 모두 상가집에서나 입을 법한 검은 옷을 입었는데 맨발로 손에 손을 잡고 구걸하고 있습디다. 계집애가 셋이고 사내애가 둘이었죠. 제일 큰 놈은 열 살을 넘었을까, 어린 것은 거의 갓난아기였습니다. 제일 큰 계집애가 아기를 안고 울지말라고 입을 맞추고 달래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신의 섭리겠지요. 나는 애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뉘 집 애들들이냐?' 제가 불가리아 말로 물었지요. 가장 큰 남자애가 고개를 들어 말하더군요 '신부님 댁 아이들입니다. 신부님이 며칠 전 마구간에서 목이 잘려 돌아가셔서 구걸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이러는게 아니겠어요!!?!


머리가 핑핑돌고 눈물이 차오르고 머리에 피가 다 빠져나가듯 현기증이 나서 하마터면 그자리에서 쓰러질 뻔 했수다. 땅바닥이 연자매 돌듯이 빙글빙글 돕디다. 내가 벽을 짚고 앉자 그제야 멈추더군요.
'이리 오너라, 얘들아 이리 오렴'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 지갑을 꺼냈습니다. 터키 파운드랑 그리스 돈이 가득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돈을 몽땅 바닥에다 쏟았지요.

'자, 가져가거라, 마음대로 가지렴, 너희들 것이니라, 너희들 것이니라,' 그리고는 물건을 사 담은 바구니도 애들에게 줘버렸지요.
마을을 빠져나오자 나는 셔츠 앞을 헤쳐 애써 땋은 성 소피아 성당 장식을 떼어 갈기갈기 찢어발기고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지요. 그리고..... 지금도 도망치고 있습니다"

..........이로써........ 나는 구원받은 것입니다..... 내 조국으로부터, 신부들로부터, 돈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나는 짐을 덜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족족 덜어버린 것입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짐을 덜었습니다. 자, 이런 걸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해탈의 길을 찾은 겁니다. 나는 드디어 '인간'이 되는 겁니다.

...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곤두설 짓도 조국을 위한답시고 태연하게 자행했습니다. 사람 목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시킨 적도 있소. 왜요? 불가리아놈, 아니면 터키놈이었으니까요. 요새 와서는 어떤줄 압니까?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새끼는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던 터키인이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아마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놈이던 나쁜 놈이던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가엷은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겁먹는다. 이 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서 땅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가엷은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나의 조국이라고 했소이까? 당신은 책에 쓰여진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 같은 사람이에요. 조국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는 그 모든 걸 졸업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소이까?"


- 그리스인 조르바 3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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