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잔을 집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손이 움직여 잔을 집어 드는 것일까?
길을 걸을 때 다리는 관절을 구부리고 펴는 동작을 반복한다. 어찌 보면 복잡하고도 정교한 동작이다. 그러나 걸을 때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정신을 팔고 걷는 것이 일반적이다. 걷는 동작 하나 하나를 제어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 관절이 얼마 만큼 어떻게 구부려지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연스럽게 '걸어진다'.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가 서빙 하는 테니스 공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상대방의 코트를 향해 내려 꽂힌다. 일반인은 이 공을 제대로 받아 치지 못한다. 그러나 테스트 선수들은 이 초고속의 공을 순간적으로 받아 쳐낸다. 그 뿐인가. 그 짧은 순간에 상대방의 어느 곳이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그 방향으로 공을 쳐 낸다. 그들은 얘기한다. "글쎄요, 판단은 정말 본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어디로 이동할 지, 언제 공을 칠지를 따로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어디로 공을 쳐낼지를 판단할 뿐이지요. 하지만 공이 올 때까지도 언제 공을 쳐야 할 지 모릅니다.<"브레인 스토리", 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리벳의 실험 - 무엇이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는가?
벤자민 리벳(캘리포니아 대학)은 의지와 동작 사이의 두뇌 현상을 실험을 통해 연구했다. 그는 동작에 대한 의지(will)를 일으키는 시점과 운동중추가 운동명령을 하는 시점, 그리고 운동근육이 움직이는 시점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학계에는 의지적인 동작이 있기 전에 두뇌에는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었다. 동작을 하기 위한 뇌세포 신호의 발생이다. 이를 일반적으로 RP라 축약 표기한다. 준비전위(RP)는 동작이 일어나기 약 1초나 그 이상의 시간 이전에 발생한다.
리벳은 준비전위(RP)가 움직임이 있기 1초(또는 그 이상) 이전과 같이 오래 전에 발생하는 점에 주목하였다. 1초 라는 시간은 긴 시간이다. 일반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일 때 움직이려는 의지가 있은 후 1초 이상이 경과한 후에 움직이는 것으로 경험되지 않는다. 거의 동시에 움직이는 것으로 경험된다. 리벳은 움직이려는 의지를 의식하는 시점이 움직임이 실제 일어나는 시점으로부터 이렇게 긴 시간 이전에 있게 되는지에 대해 알아보려 했다. 그 시간을 실제로 측정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피실험자의 근육에 측정기를 달고, 두뇌에는 뇌파검사기를 통해 뇌파를 측정했다. 움직이려는 의지를 내는 시점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광점(spot light)을 보여주는 스크린을 사용했다. 피실험자가 움직이려는 의지를 내는 시점에 광점의 위치를 나중에 말하도록 하여 광점의 위치에 해당하는 시간을 측정했다. 피실험자들은 자기가 움직이고 싶을 때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의 실험결과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논란은 지금까지 20여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우선 실험결과 설명을 위해 두뇌 운동신경에서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발생하는 시점을 RP으로 표시한다. 운동근육이 움직이는 시점을 M(movement)으로 표시한다. 사람이 움직이려는 의지를 내는 시점을 W(will)으로 표시한다.
일반적으로는 W -> RP -> M의 순서가 맞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움직이려는 의지에 의해 운동신경에서 신호가 발생하고, 이어서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리벳의 실험결과는 RP -> W -> M의 순서였다. 상식적 견지에서는 기괴한 결과이다.
일단 리벳의 실험결과를 인정한다면, 움직이려는 의지를 의식하는 시점 W은 이미 두뇌의 운동신경이 움직임을 개시하는 신호를 발생시킨 시점 RP 이후이다. 그리고 실제로 근육이 움직이는 시점 M의 이전이다.
이것은 의식적인 움직이겠다는 의지는 움직임을 유발하는, 움직임의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움직임은 움직이려는 생각 또는 결정 이전에 이미 두뇌에서 시작되어 있었다. 움직이겠다는 의식적인 의지는 이미 움직임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에 불과하다.
의식에 의해 동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작이 일어나는 가운데 그 중간 시점에서 "'움직이겠다'는 결정을 한 것처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실험결과는 '자유의지(free will)' 논쟁으로 번져 나갔다. 우리가 움직이려는 의지가 있을 때, 사실은 이미 움직임의 신호가 전달되고 있었다면, 누가 움직임을 유발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선행하여 움직임을 결정하고 있는 것인가? 의식은 단지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아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두뇌에 나타난 의식은 우리를 속이고 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전적으로 모든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느끼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의지가 없다는 말인가? '자유의지'는 없다는 말인가?
리벳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비록 운동을 유발하는 두뇌의 신호(RP)가 의식적인 의지 시점(W)보다 선행하지만, 실제 근육의 움직임 시점(M)보다는 앞선다. 우리의 의식적 의지는 이미 발생한 움직임을 중간 시점에 중단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 곧 의식적 의지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 움직임을 감지한 후에, 이를 지속하여 근육이 움직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이를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리벳은 의식적 의지라는 것은 반쪽 만의 자유를 갖는다는 것으로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거부(veto)할 수 있는 자유"이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시사하는 점은 우리가 명백하게 느끼고 있는 '내가 손을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실상은 거짓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실제의 현상으로는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이 맞을 수 있다.
두뇌에 대한 연구에서 '두뇌가 하는 거짓말' 사례는 수 없이 많다. 리벳의 실험결과도 그런 사례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할 정도이다.
리벳의 실험에 대해 그 실험내용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리벳의 실험방법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리벳의 실험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85년이었다.
월터의 실험 - 저절로 전환되는 슬라이드 화면
리벳의 실험 이외에 관련된 내용의 다른 사례도 있다.
1963년 영국의 뇌수술 의사인 윌리엄 그레이 월터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바 있다. 이 환자들은 치료의 목적으로 두뇌의 운동중추신경 부위에 전극을 이식한 상태였다.
환자 앞에 환등기 슬라이드를 설치하고 환자가 원하는 아무 때나 환등기에 연결된 버튼을 눌러 다음 슬라이드 화면으로 전환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환자들이 모르게 환자의 버튼이 아니라, 환자의 뇌에 연결된 전극의 신호를 증폭하여 이 두뇌의 신호에 의해 슬라이드 화면이 다음으로 넘어가게 장치했다. 그 결과 환자들은 깜짝 놀랐다. 다음 슬라이드를 보려고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슬라이드가 저절로 다음으로 넘어갔다고 환자들은 말했다.
이 환자들에게 슬라이드가 마치 자신들의 의지를 미리 읽어서 미리 다음 슬라이드로 스스로 넘기는 것처럼 경험했을 것이다. 이 역시 환자가 의식적으로 슬라이드를 넘기려고 하기 이전에 이미 두뇌의 운동신경에서는 활동이 시작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실험에서는 이미 시작된 두뇌의 신호에 의해 손이 반응하기 이전에, 슬라이드 시스템이 먼저 반응하여 동작한 것이었다. 이 역시 리벳의 실험에서와 같은 사실을 드러내 준다. 사람이 의지를 내는 듯한 그 순간 이미 그것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의식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
"브레인 스토리"의 저자인 수잔 그린필드는 책에서 리벳의 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P.303)
"이 발견은 놀라운 사실을 내포한다. 무언가를 하려는 의도가, 뇌가 이미 그것을 하기로 결정한 다음에 발현되다면, '당신'이 결정하기 전에 '뇌'가 결정을 한다면, 우리의 행위는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잠재의식적 과정에 의해 인도되는 셈이다. '당신'이라는 관념, 다시 말해 당신 머릿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어쩌면 뇌가 보여주는 가장 그럴듯한 속임수인지도 모른다. 진짜 지배세력은 잠재의식인데도 뇌는 의식적 자아가 행동을 지배한다는 환상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수잔의 말을 믿고, 진짜 지배세력이 잠재의식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성급하다. 아직은 논쟁 중에 있으며, 더욱 밝혀야 할 사항들이 많이 남아 있다. 잠재의식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아직 그 실체가 없다. 두뇌에는 전체를 통제하는 어떠한 통제센터도 존재하지 않는다. 두뇌는 여기저기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뇌세포의 무수한 신호들만이 쉴 새 없이 깜박이고 있는 세계이다.
의식에 대한 과학자와 학자 중에는 '의식이나 자아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직은 어떤 가설도 확증 된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으로 결론짓게 하는 실험과 현상들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의식에 대해 접근할 때, 수정하거나 버려야 할 개념이 너무 많다. 상식적으로 믿고 있던 개념들이 그 실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 또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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