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괴델의 제1, 제2 불완전성 정리

명제 P의 내용을 "P는  증명되지 않는다"라고 하자. 그러면  P는 그 자신에 대해 언급하는 매우 특이한 속성을 갖는 명제다. 그러면 여기서 이 명제 P가 증명 가능하지 않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눈(雪)이 흴 때 명제 "눈은 희다"가  참이라 할 수 있다는 대응설적 진리론(실제 감각기관에 의해 `참(true)`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진리론)이 있다. 이에 따르면, 명제 P가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P는 증명되지 않는다" 라는 내용의 명제 P는 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앞에서 어떤 명제라고 지칭한 그 명제 P는 "참이지만 증명되지 않은 명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는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수학에서 이 정리를 얻기 이전까지는 참인 모든 명제는 당연히 증명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참이라고 증명된 명제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당연시 해온 이같은 인식을 바꿔놓은 괴델의 제1불완전성정리의  결과로, 수학에서의 참이란 무엇이며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해하여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다시 묻게 한다.

괴델의 제2불완전성정리 또한 우리의 통념과  기대를 벗어나게 하였기 때문에 이 것에 의한 충격도 적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리들 모두는, 수학이라는 학문이 절대적인 진리의 규명만을  추구한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거기서는 "대충 옳다"와 같은 개연적 판단이 배제되고 절대적인 판단만을 요구한다고 알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수학에서는 모순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볼 뿐만 아니라, 수학의 무모순성의 증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괴델은 그의 제 2불완전성정리에서 이같은 기대에 상반되는 결과를  얻었다.

그의 제2불완전성정리에 따르면 "자연수론을 포함하는 공리론적 이론체계(수학의 대부분의 이론체계)가 무모순하면, 그 체계의 무모순성을 그 체계 안에서는  증명할 수 없다." 이 정리를 좀 더 알기 쉽게 표현하면  "자기 자신이 정신적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으로서는 증명해 보일수가 없다."와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학적 진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수학적 진리가 여타의 진리와 구별되는 특성은 확실성과 보편타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타르스키(Alferd  Tarski)의 진리론은 종래의 진리관을 바꾸게 하였다. 가령 "1+2=3"은 절대적으로 참이라는  인식을 우리 모두는 암암리에 갖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참임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명제 "눈은 희다" 에서는 '눈'과 '희다'라는 말이 지시하는 대상을 실제로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현실적으로 "눈은 희다"라는 사실이 있기 때문에, 그 명제를 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참과 거짓이 사실과의 대응에 의해 규정된다는 대응설적 진리관이다.  그러나 "1+2=3"에 대해서는 그 성격이 "눈이 희다"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우리에게는 "1+2=3"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뿐만 아니라 '1'이나 '2'나 "1+2=3"이라는 수학적 대상이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해서조차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수학적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눈이 희다는 식의 대응설적 진리관보다는 정합설적 진리관, 즉 명제 사이의 무모순성에 의해 명제의 진리를 규정하려는 방법이 더 중요시된다. 특히 형식주의에서는 이 진리관이 유력하다. 그러나 괴델의 제2불완전성정리는 이 진리관을 거부한다. 형식주의내에서 증명가능하더라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무모순성)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수학적 명제는 그것이 증명될 때에만 참이 되며, 증명 가능한 명제를 수학에서는 정리라 한다. 수학에서 참인 명제는 반드시 정리가 되고, 그 역도 성립한다고 오래도록 인식되어왔다. 즉, '진리'와 '정리'가 논리적으로 같은 뜻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괴델의 제2불완전성정리에 의해 참이지만 증명이 안 되는 명제가 제시됨으로써, 우리의 통념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수학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한층 더 심화되고, 증명 가능성이 수학이 참과 거짓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며, 수학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진리가 아니라 '증명 가능성'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이해가 대두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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