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영(혹은 투사 projection)은 원리들의 한쪽 절반으로 하나의 `외면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절반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자아때문에 모든 존재들과 거리를 두게 된다. 자아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원리가 그림자라고 하면 우리는 그림자를 항상 외면에서 인식한다. 우리가 그 그림자를 내면에서 발견하면 그것은 더이상 그림자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내면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외면에서 격력하게 싸운다. 그러한 노력이 계속되지만 이것은 양극성의 법칙에서와 같이 불가능하고 결국 장기소모전으로 변한다.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역설이 있다 :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에 `싫어한다` `증오한다` `경멸한다`는 표현을 통해가장 많이 몰두한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자신이 애써 받아들이지 않고 멀리했던 원리에 이제는 너무나 가까이 접근하기 때문에 마침내 그것을 직접 실현하는 것이다.
어떤 원리를 거부하면 인간은 반드시 그 원리를 직접 겪어서 깨우치게 된다. 이러한 법칙에 따라 아이들은 부모들의 혐오스러운 행동방식을 언젠가는 받아들이고, 반전주의자는 호전적으로 반전을 외치며, 도덕주의자는 뒤쪽으로는 방탕하게 되고, 건강제일주의자들은 중병에 걸리게 된다.
우리를 괴롭게하거나 불쾌함을 유발하는 주변환경이란 것은 실제로는 없다는 점을 우린 분명히 알아야한다. 환경이란 거울과 같아서 자신에 대해 평소에 알 수 없는 부분은 주변여건이나 외부세계가 반영하는 것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이때 반영되는 환경이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을 `깨어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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