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선악을 넘어서...(도덕의 계보) - 1

우리사회의 윤리, 규범, 도덕, 관습, 전통… 무엇이 되었든 그 근원을 이해해보는데 있어서 니체는 `계보학`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쓰게 되었다. 우선 다음과 같은 용어정리가 필요하다. (일상적 언어 개념의 혼동성으로 철학적 용어가 어려워지는게 슬프기는 하지만…)

★`선`과 `악` : 초월적, 상징계적, 절대적, 이미 정해진 정해진 플라톤적인 것, 당위성,
★`좋다`와 `나쁘다` : 내재적, 상대적, 다양성에 의한, 스피노자/니체적,

위 용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담한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신의 태도를 들어보면

예1) ☞`선`과 `악`관점 : 아담은 선악과를 먹지 말아야 한다.(도덕, 윤리) 먹으면 죄가 되고(상징계-초자아), 금지와 위반의 영역에 위치해 있다.
예 2) ☞`좋다`와 `나쁘다`관점 : 신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선악과가 아담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재적으로 선악과가 몸에 좋지 않다. 물론 선악과는 어떤 동물에겐 몸에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즉, 좋고 나쁨은 상대적이다. 다양성에 기반해 있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어 여자의 정조라는 개념을 보자. 정조는 과거 사회구조가, 경제적, 정치적인 면에서 부족국가나 가부장적 농경사회에서 정조를 지키는 것이 여성이라는 상품의 교환가치를 높이고 남자들의 독점적 번식권이 침탈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것이 오랫동안 굳어져 내려와 정조라는 개념이 된 것이다. 이것이 산업정보화 사회, 여권신장, 개방적 성의식, 피임약의 발달 등으로 그 개념을 받쳐주던 구조 자체가 내재적으로 완전히 변화한 지금 상황에선 그 굳어진 상징계인 정조라는 개념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더이상 내재적 의미에서 정조는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아니게 되었는데도 상징계적 의미에서 `선`, `윤리`, `도덕` 이라고 놓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굳어진 더 이상 맞지 않는 상징계를 부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해를 위한 `예`이다. 흥분하지 말도록)

그런 상황에서도 상징계를 과도하게 보수주의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은 상징계를 초월적으로 받드는 것이고 애초에 그 정조라는 상징계가 왜 생겼는지를 망각한 것이다. 즉, 그들에게 상징계는 좋고 나쁨과는 무관하게 금지와 위반의 영역에서 독자적으로 특정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물신주의적)이다. 즉, 정조라는 개념은 그 발생적 구조를 벗어나서 시대구조 자체가 변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물신주의적으로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받고 신봉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전통적 상징계가 지금 전혀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봉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초월적인 상징계-초자아, 혹은 윤리-도덕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항상 기존의 상징계가 파괴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존의 상징계를 만들었던, 그리고 그것을 굳어지게 했던 구조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치의 보수주의자들은 그런 가치가 절대적인 초월적인 것인 것처럼 수호하려고 한다. 가치의 보수주의는 비단 전통적인 우파 뿐만 아니라 좌파들도 마찬가지다.

니체는 우리가 다시 우리에게 맞는 좋고 나쁨을 새롭게 구분할 수 있도록 기존의 상징계를 파괴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즉, 허무주의 이후에야 우리는 `초인`이 되서 새로운 우리에게 맞는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고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에 도덕관념과 윤리관념이 땅에 떨어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세계는 그 윤리와 도덕 상징계가 만들어질 당시의 구조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현인들은 통제의 수단으로써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상징계, 신, 도덕, 전통, 윤리 등을 이용했다.

도덕과 윤리가 전부 파괴된 이후에 우리에게 지금 시대에 맞는 좋고 나쁨을 창조하거나 선택할 사람 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피노자와 니체가 잘 말해주고 있듯이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거나 결과만을 의식에서 받아들여 결과를 원인과 바꿔치기 한다. 즉, 좋고 나빠서 선악으로 만든 것인데 나중에는 선악이기 때문에 좋고 나쁘다는 식으로 결과와 원인이 바뀌치기 되는 것이다. 그 발생론적 구조를 망각하면, 그 도덕의 계보학을 망각하면 선악이 물신주의적으로 그 자체로 종교화되게 되는 것이다.

종교 자체도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불과하다. 스피노자 그리고 그 이후의 니체의 진정한 공헌은 바로 이 원인과 결과에 대해 기존의 사람들의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점이다. 즉, 종교는 내재적 좋고 나쁨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지 선악을 만들어낸 원인이거나 혹은 세계를 창조한 원인이 아닌 것이다. 종교나 학교 교육, 도덕, 관습, 인륜, 법 등등 일체의 상징계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쉽게 좋고 나쁨을 설명하고 알리기 위한 편법일 뿐이다. 그 편법이 세대가 바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징계로 굳어지고 결국 좋고 나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물신주의적 선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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