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자본주의가 원활히 돌아가기 위해

근대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더욱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그 취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될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위, 원리, 또는 양심에 종속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즐거이 명령에 따르고 그들에게 기대되고 있는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응하는 사람들, 폭력 없이 관리되고 지도자 없이 인도 되고 목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요구한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현대인은 자기 자신, 동료,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는 대상적 존재, 즉, 상품으로 변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현재의 시장의 조건 밑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을 가져오는 투자로서 경험한다. 인간 관계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소외된 자동 기계의 관계이고, 각자는 군중과 가깝게 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따라서 사상이나 감동이나 행동에 있어서 군중과 다른 점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타인들과 가깝게 있으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아주 고독하며, 인간의 분리 상태가 극복되지 못했을 때 항상 그 결과로 생기는 깊은 불안전감, 불안감, 죄책감의 지배를 받고 있다. 우리 문화는 사람들이 이러한 고독을 의식하고 깨닫지 않아도 되도록 도와 주는 마약을 제공한다. 제도화된 기계적 작업의 엄밀한 규격화! 이것은 사람들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곧 초월과 합일에 대한 갈망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은 오락의 규격화에 의해, 곧 음향이나 영상을 수동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더 나아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사고 곧 이것을 다른 것과 교환하는 데 만족함으로써 자신의 의식되지 않는 절망을 극복한다.

현대인은 사실상 헉슬리가 멋진 새 세상에서 그려 놓은 상에 근사하다. 곧 잘 먹고 잘 입고 성적으로도 만족하지만 자아가 없고 가장 피상적인 접촉을 제외하고는 동료들과 어떠한 접촉도 없고 헉슬리가 다음과 같은 말로 간결하게 표현한 슬로우건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비틀거린다."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 있다. 즐긴다는 것은 만족한 소비를 말하고 상품, 구경거리, 음식, 술, 담배, 사람들, 강의, 책, 영화 등을 입수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들의 식욕에 대해 하나의 커다란 대상, 커다란 사과, 커다란 병, 커다란 유방이 된다. 우리는 젖을 빠는 자이고 영원히 기대하는 자이고 희망에 가득 찬 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실망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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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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