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도적인 행동`은 의식이 선택한 증거라고 쉬 짐작하는 잘못된 버릇이 있다. 가령 다음의 예를 보자.
나나니벌은 가루이라는 애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는다. 알은 가루이의 몸속에서 부화하여 가루이를 갉아먹으면서 성충으로 자란다. 그런데 어미 나나니벌이 알을 낳으려고 가루이의 몸속에 산란관을 찔러넣은 순간 이미 그 속에 다른 나나니벌의 새끼자 자라고 있음을 알게 돼었을 때 나나니벌은 놀라울 정도로 지능적인 행동을 한다.
(나나니벌의 수정된 알은 암컷이 되고 그렇지 않은 알은 수컷이 된다. 또 수컷은 암컷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다.) 어미 나나니벌은 어차피 새끼가 취할 수 있는 자원(가루이)의 양이 적음을 알고 새끼가 성충이 되어도 크기가 작은 수컷이 되도록 막 낳으려고 했든 알의 정자를 제거하고 수정되지 않은 알(수컷)을 낳는다.
어미 벌은 새끼가 작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는 알이 수컷으로 부화되도록 `선택`하는 `영리함`을 가졌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어미 나나니벌은 무엇을 선택한 것도, 영리한 것도,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아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뇌세포 몇개만을 가진 벌일 뿐이며 의식있는 생각을 가졌을 가능성은 전혀없다.
어미 벌은 `가루이에 다른 나나니벌이 들어가있으면 정자를 제거하라`는 신경프로그램의 간단한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자동기계일 뿐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수백만년 동안의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인 설계에 대한 환상`은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며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이라는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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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여왕 -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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