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기독교 근본주의가 아닌 진리의 다원주의로

- 오강남, 『예수는 없다: 기독교 뒤집어 읽기』(현암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에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는 오강남 교수가 쓴, 『예수는 없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그 제목으로 인해, 마치 신약성서의 주인공이자 기독교인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일컬어지며, 유대교와 기독교를 가르는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불온한' 책이라는 첫인상을 갖기 쉽다. 하지만, 책의 영어제목 ― 『No Such Jesus: Reading Christianity Inside Out』 ― 에서 바로 알 수 있듯, 저자가 부정하는 것이 '예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런 예수',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만들어낸 예수상(像)이다.

그렇다면 어떤 예수가 없다는 것일까? 외형적으로는, 중동에서 사셨던 아시아인임에도 거의 언제나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앵글로 색슨 혹은 스칸디나비아) 백인으로 묘사되는 그런 백인중심적 예수일 것이다. 내면적으로는, "지금-여기에 살아가는 내 자신의 실존적 물음과의 변증법적 관계에서 나오는 심각한 실존적 물음을 거치지 않은 예수"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런 의심없이, 질문없이, 내 자신의 삶과 유리된, 그저 교회에서 믿으라기에 믿는, 그런 예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책에 함께 실린 「예수 숭배」라는 글에서 서강대 종교학과 길희성 교수는 "맹목적인 예수 숭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현대 기독교는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예수'의' 신앙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예수는 무엇보다도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 경건한 유태 청년 예수로서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교회는 바로 이 점을 망각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음으로 해서 예수의 신성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단 논쟁을 야기시켰고 교회는 분열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편견 없이 복음서를 읽어보면 인간 예수의 신앙은 매우 뚜렷하게 드러난다.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빠로 깊이 믿고 사랑하고 그의 뜻을 따르고자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운 존재였다. 너무나도 철저하게 자신을 비웠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아주 투명하게 보여주는 투명체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예수는 너무나도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너무나도 하나님을 닮았다 하여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던 것이다.


그는 철저히 자기를 비우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살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고스란히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수라고 하면 하나님을 떠올리게 되었고 하나님이라고 하면 곧 예수를 연상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예수지만 그는 결코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 않았으며,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면서 자기를 선하다고 부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마가10:18). 예수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던 분이다."


저자의 판단에 따르면, 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를 통해 진리를 갈구하는 자세가 아닌, 맹목적인 숭배와 찬양과 영광돌림으로서의 믿음. 이러한 '예수 숭배'는 '성경 숭배'와 '(율법주의적) 하나님 숭배' 및 '교회 숭배'와 굳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한마디로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부를 만하다. 예컨대,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이 쓰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신이고 다른 모든 신들은 우상에 불과하며 (따라서 여호와를 믿지 않는 모든 이들은 '주의 품'으로 인도해야 하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된 성스러운 곳이라는 생각이 그렇다.

자신들만이 유일한 '선(善)'이라고 믿는 비관용적 태도, 고종석이 그의 에세이집 『코드 훔치기』(2000)에서 시원하게 요약하듯, "선에 대한 집착은 곧 순수에 대한 강박, 온전함에 대한 갈증이고, 그것들은 불가피하게 종교적·정치적 근본주의로 이어지"고 "자신을 천사라고 믿는 이런 근본주의자들은 이단과 악마에 대한 살육과 파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중세의 잔혹한 마녀사냥의 역사와 2차 대전 이후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중동지방의 이스라엘-아랍 분쟁, 그리고 단군의 목을 자르고 불상을 훼손하는 사건들을 통해 끊임없이 보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근본주의 태도는 고대와 중세 때나 가능했던 것이지, 이성과 지식과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는 성경 및 유대교의 생성과정이나 기독교의 전파과정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라고 하면서, 저자는 예컨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저자들이 복음서를 쓸 때 자기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쓴 것이 아니다. 목격자로 쓴 것이 아니라, 그전 목격자들이 한 말이 전해내려 오는 것을 듣고 쓴 것이다. 말하자면 목격자의 증언이 아니라 간접 자료에 입각해서 작성한 보고서인 셈"이라고 지적한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환유와 비유로 가득 차 있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춰서 내 속에 있는 내 자신의 어떠함을 보고 뭔가를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다. 아울러, 성경을 이루는 수많은 경전들 중에서 몇몇 학자들에 의해 정전(正典)으로 선택된 것들이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책'임을 상기한다면, 그 텍스트가 하나님의 것인지 사람에 의한 것인지는 명백하다.


또한 유대교는 "바벨론 포로 때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천사, 부활, 최후심판, 낙원 등의 개념을 받아들였고, 기독교도 이런 혼합된 유대교 사상에다 희랍의 밀교(mystery religions)나 철학 사상을 결합시켜서 생겨난 합작품이다" 기독교의 전파과정에서 보아도, 그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이 전세계에 퍼진 게 아니라, 수 백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더해지고, 덜해지고, 분파가 생기고, 교리가 바뀌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전파된 것이다. 일례로 "한국에 온 선교사 대부분은 중국이나 일본에 간 선교사와는 달리 극단의 근본주의자가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초기 선교사가 남겨놓은 좋지 못한 유산 중 하나가 현재 한국에 팽배한 기독교 배타주의"라고 저자는 일침을 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만, 혹은 내 교회만, 유일한 참종교로 떠받들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신명을 바치라고 '자발적'으로 선전하고 다니는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기독교 근본주의의 배타성과 비이성에서 벗어나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서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메시지다. 그 진리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 길은 기독교에, 불교에, 도교에, 이슬람에, 많은 종교들에서 뻗어 나온다. 축자적 성경읽기의 율법주의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면, 결국 진리들은 서로 통해 있다. 장자나 석가모니가 의식구조를 먼저 개변(改變, transformation)시키는 것이 진리에 이르는 처음 길이라고 설파했을 때, 예수 또한 공생애를 사신 후 외치신 첫마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를 통해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의식의 개변을 가르쳤던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외치셨을 때 그 '자비(compassion)'는 부처의 그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진리를 깨달은 참선의 사람이었다면 예수 또한 언제나 기도하신 명상의 사람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예수 또한 '성불(成佛)'하신 분 아닌가! 우리 모두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길벗'이 될 때, 그리하여 자기 종교 근본주의를 버릴 때, 우리 세상은 더욱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고, 종교는 붉은 네온사인과 거대한 불상에서 벗어나 '진리의 길'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러한 예수`는 없다. 예수의 삶을 따르는 우리가 있을 뿐이다. 숭배되는 예수 그 분을 위해 모든 진리가 하나에 종속되고, 모든 길이 통합되며, 모든 종교가 우상숭배의 저주 속에 가두어지는 근본주의에는 종말을 고하자. 그런 예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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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는 없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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