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게으름뱅이의 정신분석 - 억압, 협오, 그리고 시공간의 기원

억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하나의 모순된 행위이며, 부정하는 동시에 긍정하는 것, 긍정의 의미를 포함하는 부정이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한 인지가 없으면 억압은 불가능하며, 억압은 그 인지를 영속시키는 것이다.

공포증의 환자가 그 공포의 대상을 억압하려 하면 할수록 공포가 심해지는 것도, 그리고 강박신경증의 환자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더욱 강박관념이 머리속에 달라붙는 것도 그 때문이다.

---------------------------------------------------------
게으름뱅이의 정신분석 p. 128


우리가 어떤 인물을 혐오하는 것은, 그 인물이 우리의 억압된 욕망을 상상속에서만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내키는 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 곧 우리는 나쁜 짓이면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알고 참지만 그 어떤 인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도 당연히 받아야 할 벌조차 받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벌을 받기는커녕 도리어 바람직한 결과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일지라도,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무관심한 경우라면, 우리는 그것을 실행한 인물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 인물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게으름 뱅이의 정신분석 221p


시간은 회한에서 비롯되고, 공간은 굴욕에서 비롯된다.

무의식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음을 프로이트는 발견하였다. 무의식에는 일체 모순이 없고 억압이 없으며, 모든 것은 가능하고 공간의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에서 비로소 시간이 나타난다.  인간이 시간을 알고 역사를 갖게 된 것은 억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욕망을 억압했을 때는 그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만족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서 회한이 인다. 이 회한이 우리의 관심을 만족되지 않았던 욕망에 얽맨다.  우리는 그 욕망을 억압한 시점을 과거로 설정한다.

미래란 역방향으로 투영된 과거 - 가장된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란 수정되어야 할 과거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과거를 수정할 기회가 한정되기 때문이다.  사형 또는 죽을 병임을 선고받은 자의 절망이란, 회한으로 가득찬 과거가 끝내 이대로 머물 수밖에 없게 된 절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공포를 아는 것은 억압하는 동물인 인간뿐인 것이다.

억압과 욕망의 불만이 없으면 시간은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비추어보아도 명백하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정신없이 지낸 시간은 짧게 느끼고, 욕망의 만족을 차단한 채 참아내야 했던 시간은 길게 느낀다.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우리가 태어난 뒤 몇 해 동안에 걸친 유아기의 기억을 갖지 못함은, 뇌조직이 생리학적으로 미숙하고 기억 기능이 아직 충분히 발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억압을 모르는 시기였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최초의 유아기 기억이 시작되는 시기와 예컨대 벌거숭이 몸을 수줍어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대체로 일치한다.
--------------------------------------------------------
게으름뱅이의 정신분석 - 시간과 공간의 기원 중에서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