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로 `자살`에 관한 것이다. - 그 책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었고, 충격을 받는 나는 잠시 움츠러들었다. 충격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이 계속되었다. "이 세계는 과연 3차원인가? 인간의 마음은 정말 아홉가지로 구분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인간이 벌이고 있는 게임의 일부이며, 사람들은 하나의 쟁점에 결론이 내려진 후에야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 책은 알제리 태생의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의 대표작 <시지푸스의 신화> 였다. 처음 읽을 때는 매우 냉담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이해력이 성장하면서 카뮈의 냉담함은 나의 인식 속에 부드럽게 녹아들기 시작했다. 카뮈의 진정한 고민은 “과연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문제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그러나 카뮈는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반면, 과학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가치를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과학은 분명 추구할 만한 가치는 있지만 그것이 삶의 가치를 더 높여주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당시 물리학자를 꿈꾸던 나는 인생의 궁극적 무대인 이 우주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이해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었다. 만약 우리가 지하에 살면서 지구표면의 찬란한 태양빛, 광활한 바다에 대해 전혀모른다면, 또, 인간의 진화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촉각 이외의 감각기관을 전혀 발달시키지 못했다면, 또, 인간의 분석능력이 5세이후 정지해버렸다면 이 우주란 지금의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였을 것이다. `진리`라는 개념은 이렇듯 우리자신의 감각과 지성으로 닿을 수 있는 수준에 따라 무한한 변화를 가질 수 있으며 무한한 물음을 던져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진리란 무엇인가? 물리학의 발전으로 우주의 구조를 밝혀내고, 신경생리학이 뇌의 작동원리를 밝혀낸다 한들 그것이 인간의 삶과 인간이 추구하는 진리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카뮈는 이점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진리는 사고의 영역에 존재하며, 오로지 경험에 의해 그 실체가 밝혀진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은연중에 카뮈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과 느낌에 현혹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이다. 수십년간 자연과학을 공부해온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현대과학은 카뮈의 견해, 또는 사람들의 상식과는 분명히 다른 관점을 밝혀내고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인류는 과학을 연구하면서 “인간의 경험은 얼마든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였다. 우리는 사물의 진실된 면을 쉽게 인지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는 생소하고 흥미로우며 우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짐작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카뮈의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물리적 질문이야말로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카뮈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형이상학적 문제들도 그 근본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물리적 실체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을 고려하지 않고 존재의 근원을 추적하는 것은 어두운 방에서 알지도 못하는 적을 상대로 씨름을 벌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주변의 모든 사물을 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의 감각이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 않은가?
- Brian Green, The Fabric of the Cos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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